인생은 깔끔하게 군더더기는 "NO"

입력 2003-10-08 08:5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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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이 난무하는 세상이다.

드라마, 영화, 광고, 패션 등 전 방위에 걸쳐 '쿨'하지 않으면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쿨'은 남녀관계뿐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에서 새로운 소통 관계로 자리잡고 있다.

◇난 '쿨'한게 좋아

올 한해를 뜨겁게 달궜던 TV 드라마와 영화의 흥행 키워드는 단연 '쿨(cool)'이다.

고색창연한 러브스토리는 식상한 지 오래. 사랑이 식으면 깔끔하게 '안녕'이라고 말하면 된다.

울고 짜거나 매달리는 식의 감정은 없다.

올해 상반기 큰 인기를 누렸던 '옥탑방 고양이'의 유동준 실장(이현우)은 '쿨'의 전형이다.

극중 유동준 실장은 신입사원 남정은(정다빈)을 좋아하면서도 그녀가 다른 남자를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받아들인다.

또 상사라는 지위를 이용해 훼방을 놓지도 않을 뿐더러 한발 더 나아가 유학까지 보내 회사의 인재로 키운다.

영화 '싱글즈'에서 어릴 적부터 친구인 동미(엄정화)와 정준(이범수)의 관계도 '쿨'그 자체. 정준과 술김에 저지른 단 한번 실수로 임신한 동미는 '쿨'하게 남자에겐 알리지 않고 혼자 출산을 준비한다.

드라마 '다모' 팬들의 가슴을 미어지게 만든 사랑고백도 "아프냐. 나도 아프다"가 고작이다.

끈끈한 정과 화끈한 감정을 중시하는 나이 든 세대에겐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표현이지만, 젊은 세대는 열광한다.

이런 경향은 최근 20대 여성들 사이에 인기를 모으고 있는 순정 만화에도 그대로 드러난다.

격월간 순정 만화잡지 '오후'에 등장하는 '쿨'한 여성들은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고 사랑에도 호들갑을 떨지 않으며 현실을 담담하게 바라본다.

특히 최근 발간된 단행본 '어느 특별했던 하루'(한혜연)는 캐릭터를 지나치게 미화시키지 않는 방법으로 현실을 쿨하게 보는 요즘 여성들의 심리를 반영하고 있다.

◇'쿨'하게 살려면?

미리엄 웹스터 사전은 '쿨(cool)'에 대해 '어떤 경우에도 냉정함과 자기 조절능력 잃지 않기','너무 열렬하거나 친근한 모습 보이지 않기', '감정의 기복 절제하기'로 정의하고 있다.

이처럼 '쿨'한 생활 태도를 유지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애인과 헤어지면 휴대전화 기억번지에서 전화번호를 지워버려야 하고 △흔한 제품보다는 내 스타일에 맞는 제품을 사야 한다 △다른 사람 앞에서는 절대 울지 않으며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을 의무 때문에 하지 않는다 △동거하다가 헤어진 경험이 있는 사람과도 결혼할 수 있어야 하고 △패션의 흐름을 빨리 알아차리고 남보다 앞서 즐겨야 한다.

혼자 살면서도 품위를 유지할 수 있는 정도의 경제력도 필수다.

'쿨'하게 사는 길은 멀고도 험하다.

끈끈한 정과 집단적 인간 관계를 중시하는 우리 사회에서 '쿨'한 태도는 나이 든 세대로부터 '버릇 없다'는 취급을 받거나 친구들에게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쿨'한 인생관을 견지하려면 아무리 주변에서 잔소리를 해도 상처받지 않을 수 있어야 한다.

◇왜 젊은이들은 '쿨'에 열광하는가.

'쿨'이 과거 군사주의 잔재와 권위주의, 집단적 관계에 얽매여 있는 기성 세대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하지만 '쿨'한 것을 찾는 요즘의 세태가 사회적인 변화라기 보다는 상업 자본주의와 결합한 일시적 현상이라는 목소리도 높다.

상업 자본주의는 젊은 세대들이 느끼는 이상과 현실 간의 괴리감을 이용해 끊임없이 사람들의 취향을 만들어내고 이미지를 조작한다는 것. 자신만은 개성이 뚜렷하고 남과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거리에는 모두 똑같은 옷을 입은 사람들로 넘쳐난다는 설명이다.

계명대 사회학과 김혜순 교수는 "개성을 존중하는 것 자체가 상품이 되고 있다"면서 "이러한 형태의 개성은 진정한 개성이 아니라 내맘대로 소비할 수 있는 개성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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