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옛 도자기는 뉴욕 경매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때로는 수 백만달러를 호가한다.
그러나 옛 가마터에는 그곳을 감독한 관리들의 이름이 새겨진 비석만이 있을 뿐 그토록 많았던 도공들의 이름은 하나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 기술을 남에게 가르쳐주기는 아깝고 그렇다고 자식을 고생스럽고 천대받는 도공이 되게 할 수도 없으니 자신과 함께 무덤에 묻혔다'는 청자기 도공의 애절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조선도공의 이름은 오히려 일본에서 찾아낼 수 있는데, 그 중에 뛰어난 자는 당당히 신으로 추대되어 굉장한 신사에 봉사되어 있다
임진란에 일본으로 납치된 조선 도공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 대접을 받았다.
그들의 후손은 극진한 대접 속에 더욱 기술을 다듬어 좋은 도자기를 유럽에 대량 수출하여 명치유신의 군자금을 마련, 일본 근대화의 원동력이 된 것이다.
본고장인 조선은 기술자를 천하게 여겨 근대화에 실패했다면, 일본은 우대함으로써 조선침략의 발판으로 삼았으니 아이러니컬한 역사의 한 단면이다.
과학기술이 국력에 직결됨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국력을 단순히 수출액으로 판단하거나, GNP만을 내세우는 일은 큰 의미가 없다.
아무리 물건을 많이 생산하고 수출액이 높아도 자국의 발명품이 아닐 때는 상품에 특허료(royalty)를 지불해야 한다.
결국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사람이 가져간다'는 속담처럼 수익의 상당 부분을 우아하게 걷어가는 사람은 따로 있다.
가령, 우리의 주요 수출품인 핸드폰은 한 개 생산할 때마다 5%의 특허료를 지불한다.
무역고로 보아 한국의 국력은 세계 12위이며, 머지않아 GNP 2만달러를 달성한다고 한다.
그러나 GNP 2만달러가 되는 나라는 거의가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10명 이상 배출한 나라들이다.
노벨과학상 수상자 수를 나라별로 보면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스웨덴, 스위스 순이며 아시아의 나라로는 유일하게 일본이 11위에 들어 있다.
인구 1천만명을 단위로 하면 스위스는 18명으로 미국의 5.7배이며 GNP 또한 4만달러로 세계 1위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통계수치를 자랑하지만, 정작 노벨과학상 수상자는 한 명도 없다.
노벨과학상 수상자수에서 볼 때, 현정권의 'GNP 2만달러'는 한낱 꿈에 불과함이 분명하다.
본래 노벨과학상은 과학 원리에 관한 혁신적 업적에 수여된다.
그러나 그 원리가 응용되어 기술혁신에 이어지는 일은 당연하다.
특히 최근의 과학업적은 원리와 응용 사이의 거리가 짧아져서, 원리의 발견이 곧 기술화되고 상품으로 제작된다.
노벨상 수상자가 특허를 통해 부를 쌓는 기회가 많아졌고, 국익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물리학 분야의 킬비(2000년 수상)는 미국 텍사스 인스투르먼트(Texas Instrument)의 기술자로 보유 특허가 무려 129건으로 21세기 최대의 기술혁신을 선도하고 있다.
그간 일본이 그 특허에 지불한 액수만 해도 무려 3조 5천억원이 넘는다.
또한 비니히(1986년 수상)는 92건, 예이베르(1973년 수상)는 83건의 특허를 획득하고 있다.
화학분야에서는 노요리 료지(2001년 수상)가 270건으로 가장 많고, 랜(1987년 수상)은 95건 등이 있다.
생리.화학분야에서는 하운스필드(1979년 수상)가 192건, 샐리(1977년 수상)는 134건, 히칭스(1988년 수상)는 123건 등이 있다.
노벨상은 명예와 부를 함께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하지 못하는 것은 가치관과 정책의 부재 때문이다.
인류사에 빛나는 한국의 삼대 발명품인 금속활자, 한글, 복식부기는 우리의 과학적 창의력을 분명히 보이고 있다.
그러나 요즘 한국의 대학에서는 이공계 기피현상이 나타나고, 심지어 서울대 물리학과 졸업생이 고시에 합격하는 일조차 있다.
10만이 넘는 고시 지망생이 연간 1조원 이상의 학비를 써가며, 장원급제로 금의환향하는 이도령의 꿈을 꾸고 있는 것이다.
한편, 기술자는 사기를 잃고, 3D산업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맡기고 있다.
오늘날에도 조선시대와 다름없이 벼슬아치가 대접받고 과학.기술자는 푸대접을 받고 있는 것이다.
고시 지망생이 많고 자연계 기피풍조가 있는 한 우리는 득 없이 재주만 부리는 곰의 신세에서 벗어날 수 없다.
김용운(한양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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