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섬유 이대로 둘 것인가(1)-포스트밀라노

입력 2003-10-07 11:51:22

"단일산업에 3천670억원의 자금이 투입된 것은 전국 어디서나 없습니다.

광주의 광산업에 600억, 부산 신발산업에 1천억원이 투입됐을 뿐입니다".

지난 8월 대구.경북언론사 편집, 보도국장과의 인터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그간의 정부지원 내역을 몇차례 언급했다.

노 대통령의 발언의 기저에는 국비 투자액에 비해 성과, 소위 아웃푸트(out put)를 낳았느냐는 의구심을 나타낸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노 대통령은 이처럼 노동집약적인 직물업의 한계를 지적하고, 기능성.산업성.첨단성 섬유업으로 방향을 돌려야 한다고 제시하고, 포스트 밀라노 사업을 대학 등과 연계하는 방안을 말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의 이같은 시각은 한마디로 정부 당국자들이 지닌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주는 것이기도 하다.

그 결과 포스트밀라노프로젝트 예산이 대폭 삭감되면서 대부분 사업이 무산될 지경에 처했고, 그를 두고 당국과 업계, 업계와 업계,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간의 불협화음까지 불거지고 있다.

대구.경북의 섬유산업, 이대로 둘 것인가.

사실 대구.경북 섬유, 패션산업의 원대한 꿈을 담은 '2단계 밀라노프로젝트(포스트밀라노:2004~2008년)호'는 출발도 하기전에 암초에 부딪치고 있다.

정부는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1999~2003년) 성과에 불신을 드러내며 대규모 예산 삭감 조치를 단행했다.

대구시가 지난 4월 제출한 포스트밀라노 추진 전략도 지역 섬유.패션산업의 비전을 제대로 제시하지 못한 데다 여타산업 자원을 나열해 정부 예산 삭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나 포스트밀라노는 여전히 약 1천억원 규모의 지역 최대 단일 사업이다.

지역 제조업체의 35.6%에 이르는 섬유는 전체 제조업 생산액의 29.7%를 차지하고 있다.

섬유 고용 창출효과 또한 전체 제조업의 38.1%에 달해 포스트밀라노 프로젝트가 제대로 세팅이 되지 않을 경우 대구.경북 경제에 미칠 타격은 엄청나다.

(2001년 광공업 통계 기준)

안도상 대한직물공업연합회 회장은 "밀라노프로젝트가 정부지원금과 연결되면서 비섬유업계 등에서 '포스트 밀라노프로젝트는 절대 안돼'라는 무조건적 불신을 키우는 것은 금물"이라며 "10여년 동안 전문기구와 꾸준한 구조조정을 통해 '사양산업' 오명을 벗고 섬유산업을 첨단산업으로 탈바꿈시킨 일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높은 생산성과 고부가가치를 낳은 첨단 섬유, 의료용 섬유, 산업용 섬유, 고기능성 섬유 수출국은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 일본 등 선진국이다.

포스트밀라노에 불고 있는 총체적 개혁의 바람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혁신의 목소리는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철저한 자기반성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밀라노프로젝트의 공과를 따져 새 비전을 제시하고 이를 바탕으로 포스트밀라노 추진의 정당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

또 예산확보를 놓고 첨예한 갈등을 빚고 있는 지역 전 섬유업계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한편 시와 연구소 및 업계는 물론 IT, BT 등 다른 신산업과의 네트워크 체제를 구축해 섬유산업 전체의 혁신을 도모해야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밀라노 현황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기획예산처와 산업자원부의 발주로 분석한 포스트밀라노 적정 예산은 925억원으로 당초 예산안의 4분의1 수준으로 급감했다.

박준경 KDI 선임연구원은 "밀라노프로젝트는 사후 평가없이 하드웨어 조성에 지나치게 매달렸다"며 "패션어패럴밸리 경우 국비 700억원이 지원됐지만 시비, 민자 출연은 전무해 더이상의 예산 지원은 곤란하다"고 밝혔다.

대구시는 1천700억원, 1천400억원, 1천100억원의 3가지 예산안으로 KDI안에 반발하고 있다.

시는 마지노선인 1천100억원만큼은 지역 국회의원들의 힘을 총 동원해서라도 반드시 '사수'하겠다는 전략이라 예산 확보에 한가닥 변수를 남겨두고 있다.

그러나 포스트밀라노는 그 자체로도 적잖은 문제점을 안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역 언론사 국장단과의 오찬에서 "밀라노프로젝트에 3천670억원(현재까지 2천995억원)의 국비가 지원됐지만 대구 직물이 과연 살아날 수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노동력에 의존하는 섬유는 어렵다.

앞으로는 기능성섬유와 산업용 섬유를 중점적으로 개발하는 프로젝트에 주력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하지만 포스트밀라노 1차 기획안은 이같은 대통령 조언에 전혀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대구시와 대구.경북섬유산업협회가 주관기관간 사업 통합 조정 역할에 실패, 여전히 주관기관 독자사업 위주의 부풀리기식 기획안 작성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첨단 섬유 개발은 직물, 염색은 물론 섬유와 타업종간 협력체제 구축이 필수다.

첨단 섬유는 원단 제직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염색 후가공이 더해져야 하며 건축, 토목, 의류, 자동차, 전자, 바이오 등 해당 산업과의 사전 연계없인 시장 확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염색기술연구소(400억원)와 한국섬유개발연구원(250억원)은 최소한의 예산 확보에 성공했지만 업계 공조체제 미비와 밀라노프로젝트 평가 작업 미흡으로 지역 섬유업계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고 있다.

▨포스트밀라노 과제

이에 따라 지역 섬유업계는 지금부터라도 포스트밀라노에 대한 구체적 청사진을 다시 짜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업계는 이와 관련한 첫번째 과제로 1단계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철저한 평가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자체 내부평가부터 확실히 해야 밀라노프로젝트에 대한 불신에 가득차 있는 정부를 설득할 수 있다는 것. 성공과 실패 요인을 명확히 따져 공은 최대한 살려야 한다는 것이다.

정훈 대구.경북직물조합 이사장은 "밀라노프로젝트를 통해 구축한 각종 하드웨어 구축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분명히 따져야 한다"며 "포스트밀라노 세부사업 내용은 이같은 절차를 거쳐야만 비로소 사업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성공적 포스트밀라노 추진의 두번째 과제는 사분오열된 업계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일이다.

지역 염색업계와 직물업계는 지난 96년 섬유개발연구원 원장직과 97년 대구 상공회의소 회장직 선거를 놓고 대대적으로 충돌한 후 지난 10여년간 반목과 갈등을 거듭하고 있다.

밀라노프로젝트 기간 중 섬유개발연구원과 염색기술연구소가 서로의 사업을 놓고 충돌을 벌인 사실은 두고 두고 지역 섬유업계의 비난을 사고 있다.

대구.경북 섬유산업협회가 업계 의견을 수렴해 적절한 통합 포스트밀라노 기획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도 이같은 업계 갈등에 기인하고 있다.

유기적 협력체제에 대한 필요성은 정부가 먼저 공감해 경북대학교내 대구사회연구소는 최근 지역 섬유산업 혁신체제와 관련한 국가균형발전위원회 연구과제 수행에 돌입했다.

김형기 경북대 경제학부 교수는 "섬유기업과 섬유기업, 주관기관과 주관기관, 섬유기업과 주관기관, 시와 주관기관, 섬유산업과 IT, BT 등 신산업과의 교류가 절실하고 이 과정에서 밀라노프로젝트에서 소외된 지역 대학의 중계 역할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특별취재팀=민병곤.서봉대.이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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