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대구하계U대회 폐막 전날 밤, 대구은행 연수원에서 숙박을 하던 북한응원단은 연수원 주변에서 화려한 네온사인 불빛을 뽐내는 모텔건물에 관심을 보였다.
그러나 우리측 안전요원들은 "모텔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북한 응원단의 질문에 제대로 설명할 수 없어 고민했다고 한다.
휴일인 3일과 일요일인 5일 팔공산 자락에 있는 칠곡군 동명면 기성리 대구은행 연수원을 다시 찾았다.
연수원 6층에서 바라보니 팔공산은 청명한 가을 하늘과 맞닿아 있다.
산수화가 따로 없다.
그러나 내려다 보면 눈살이 찌푸려진다.
산 중턱 아래쪽으로 화려한 건물 주변 곳곳이 파헤쳐져 있다.
난개발의 흔적들이다.
칠곡군이 열악한 군재정을 확충한다는 미명으로 준농림지역에 숙박업소와 음식점을 마구잡이로 허가한 결과다.
◈북한 응원단도 놀라
수백만평의 녹지공간이 식당과 숙박시설로 가득찬 유흥지로 변한 것은 불과 5, 6년 전이다.
현재 이 일대에는 식당 190군데와 호텔과 모텔 등 숙박업소 50여곳이 영업 중이다.
그러나 예전과 달리 흥청대던 분위기는 수그러들었다.
전 번영회장 류태현(44.한티고을 대표)씨는 "올들어 경제난이 심해지면서 단골손님들조차 얼굴보기 힘들다"며 "요즘은 현상유지하는 식당이 10%도 채 안될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가끔 식당업을 해보려는 사람들이 찾고 있다.
하지만 이미 풍치 좋은 곳은 기존 식당들이 모두 차지해 경쟁력이 없다.
식당허가를 받을 수는 있어도 국토이용관리법의 강화로 150평을 초과할 수 없다.
따라서 식당건물과 주차장까지 마련하기는 어렵다.
숙박업소도 불황에 시달리고 있다
숙박업소가 지나치게 난립한데다 손님이 줄면서 유치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것이다.
영업이 잘되는 곳은 화려한(?) 시설로 소문난 4, 5곳에 불과하다.
영업이 신통찮은데도 20여 곳의 대형모텔은 최근 경쟁적으로 시설단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화려하게 외형을 꾸미지 않으면 손님들이 발길을 돌리기 때문이다.
대구은행 연수원 맞은편 산자락 중턱에는 전원주택 공사가 한창이다.
숲속에 자리잡은 이곳은 수년전 전원주택 부지로 개발됐다.
그러나 칠곡군의 난개발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게 일자, 지금까지 방치해오다 올해초 공사를 재개했다.
산중턱의 공사현장에 접근해보니 벌써 십여채의 별장풍 주택이 들어서 있고 다른 몇몇 곳은 건축이 한창 진행중이다.
◈주민들 "남세스럽다"
대구은행 연수원 맞은편의 가좌마을 주민들은 기성리 일대에 대형 숙박업소 등 유흥시설이 들어서면서 창피해 못살겠다고 하소연한다.
마을 입구에 대형 모텔들이 자리잡고 있는 데다 마을 안쪽에도 숙박업소가 들어서 마을을 드나들 때마다 불륜 행각을 벌이는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을까 걱정된다는 것. 밭일을 하던 주민 박모(56)씨는 "장성한 아이들이 마을을 드나들 때 엉뚱한 오해를 살까봐 걱정"이라며 "집에 못오겠다며 짜증을 내는 마을 젊은이들도 많다"고 전했다.
기성리 일대가 팔공산 훼손과 난개발의 대명사로 지적되면서 칠곡군은 현재 신규 건축허가를 규제하고 있다.
그러나 칠곡군은 이미 지난해 이 일대를 '팔공산지구 개발사업지'로 지정했다.
팔공산과 유학산 일대를 개발해 관광객을 유치한다는 복안이었다.
2011년까지 10년 동안 팔공산지구에 민간자본 69억3천60만원을 유치하고, 유학산 지구에 34억7천200만원을 투자하는 등 104억 600만원을 들여 눈썰매장과 유희시설, 온천장, 실버타운 등 휴양지구와 골프장, 청소년수련지구, 산성재 휴게단지 등 대규모 위락단지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대형 위락단지는 팔공산 북편자락까지 이어져 있다.
대구에서 동화사를 거쳐 넘어오거나, 칠곡 동명에서 들어와 한티재 휴게소를 거쳐 군위 부계면 제2석굴암으로 통하는 길은 최고의 드라이브 코스로 각광받으면서 주말과 공휴일마다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동명면 소재지에서 송림사로 통하는 지방도로 접어들면 동명 저수지 일대부터 식당들이 줄을 잇는다.
동명저수지 주변 구덕리의 조정무 이장은 "송림.양지마을의 식당가는 대부분 민속음식점으로 마을 주민 일부와 외지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울려 열다섯 곳이 영업중"이라고 했다.
동명저수지를 거쳐 팔공산 방면으로 시원하게 뚫린 지방도를 5분쯤 달리면 동명면 기성리다.
이 곳도 동화사로 통하는 기성로와 군위군 부계방면의 한티로로 갈라지는 가좌삼거리부터 식당촌과 모텔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기성로 방면은 대구은행 연수원 앞마을 일대까지 온통 식당촌과 숙박시설들이 들어서 있다.
그러나 대구은행 연수원을 지나 대구시 경계를 넘어서면 한적한 풍경으로 바뀐다.
◈밤이면 유흥가 변신
밤이 되자 기성리 일대는 불야성을 이뤘다.
도로변엔 대형식당, 식당 뒤에는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치장한 대형모텔들이 웅장한 자태를 뽐낸다.
모텔의 화려한 네온사인과 대형식당의 밝은 조명에 취하면 서울 강남의 유흥가에 왔다고 착각할 정도다.
이곳의 야경은 대구은행 연수원에서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밤이 깊어지면서 동화사 방면과 군위방면에서 넘어오는 드라이브 차량들이 꼬리를 문다.
하지만 대부분 스쳐 지나갈 뿐이다.
몇몇 소문난 식당만 북적댈뿐 대부분 한산한 편이다.
그러나 이 일대 식당들은 24시간 영업을 고수한다.
일부 음식점은 방갈로와 조용한 방(?)까지 갖춰놓고 고객유치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식당주인들은 "경기가 나빠지면서 찾는 손님 수가 확연히 줄었다"며 울상이다
식당은 부계방면의 한티로에 더 많다.
한티휴게소에서 가산야영장 밑자락까지 식당들이 줄지어 있다.
이 부근은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흔적이 아직도 남아있다.
골짜기마다 큰 나무가 쓰러져 있고, 차량통행에 불편을 느낄 정도로 도로가 파여져 있었다.
또 산자락에서 흘러내린 흙들이 도로를 뒤덮고 있다.
가산야영장~한티순교성지~한티휴게소로 이어지는 도로는 드라이브 나온 연인과 가족나들이객들로 북적거렸다.
이 곳에서 군위방면으로 넘어가는 팔공산 자락 뒤편도 도로를 따라 대형 식당들이 들어차 있다.
칠곡 지역 팔공산 자락은 인간의 탐욕과 원초적 욕망이 적나라하게 펼쳐진 아수라장이었다.
이 곳엔 대구시민들과 대구 인근 주민들의 휴식처인 팔공산이 없었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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