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語는 '외계어'...한글 수난 심각

입력 2003-10-06 09:07:12

오는 9일이면 세종대왕이 한글을 만든 지 557돌을 맞는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한글이 갈수록 수난을 겪고 있다.

특히 인터넷의 급속한 확산으로 신세대 사이에 번지고 있는 '한글 비틀기'는 이미 위험수위를 넘었다.

달력에 공휴일로 빨갛게 표시돼 온 한글날이 검정으로 표시된지 12년. 우리 말과 글의 현장을 살펴봤다.

◆그들만의 언어=2세대 통신언어가 속칭 '외계어'란 이름으로 사이버공간에서 횡행하고 있다.

'방가' '하이루' '안냐세요' 등 축약과 빠른 의사전달을 위해 사용되던 1990년대 1세대 통신언어와 달리 최근의 2세대 통신언어는 한글자모, 영어, 한자, 일본어, 특수문자 등을 조합해 일반 네티즌조차 그 의미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우리말을 극단적으로 왜곡.변형시킨 게 특징이다.

재미로, 튀고 싶어, 또래 의식을 강조하기 위해서…. 통신언어는 이런저런 이유들로 인해 10대들 사이에서 등장했다.

10여년의 짧은 역사지만 통신언어는 청소년들의 70%가 일상언어사용에 영향을 받았다고 말할 정도로, 언어생활의 큰 축으로 자리잡았다.

그만큼 한글의 훼손은 심각한 지경에 빠진 것이다.

◆절실한 우리글 교육='마니(많이)' '절라 감사함다(대단히 감사합니다)' '쇠욜(금요일)' '우쒸 열라 열바다(너무 화가 나)'….

"요즘 일기장이나 받아쓰기 시험지를 보면 세종대왕님께 무척 부끄럽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 이영중(29)씨는 "인터넷 공간에 범람하고 있는 잘못된 말들이 초등학교까지 흘러들어 한글이 만신창이가 돼버렸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듯 통신언어는 우리 꿈나무들까지 위협하고 있다.

우리글을 아직 제대로 익히지 못한 초등학교 저학년들에게 잘못된 통신언어는 치명적이다.

습관으로 이어지면 일상생활에서의 의사소통 기회상실 등 심각한 문제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문법교육 강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언어 습득력이 높은 10대들에게 올바른 우리글 교육은 절실하기 때문. 여기에다 통신언어 교육, 인터넷 운영자들의 지속적인 홍보, 바른언어 사용을 위한 시민운동 등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우리말.글을 사랑하자="젊은층에서 시작된 한글훼손 문제, 당연히 우리 젊은이들이 풀어야 하지 않겠어요".

1일 대구교대 우리말 사랑동아리 '한말글(한국의 말과 글)'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올바른 우리말을 쓰기 위한 스터디 모임이다.

진선경(20)씨는 "한글은 이 세상 어떤 언어보다 배우기가 쉽고 과학적인 언어"라며, "그렇게 뛰어난 우리글을 함부로 취급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어 안타깝다"고 했다.

그래서 요즘 회원들의 우리말 공부는 더 열성이다.

'예쁜 한글이름 지어주기' '교내 잘못된 우리말 표기 고치기' '비속어.은어 안 쓰기' 등의 행사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회장 김화정(20)씨는 "미묘한 감정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풍부한 어휘력 등 전세계가 인정한 한글의 우수성을 우리 국민이 모르면 되겠느냐"며 "우리글의 과학성 및 독창성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영남대 한글사랑 동아리 '한글물결'과 계명대 '한글메아리', 대구가톨릭대 '한글한빛' 등 많은 대학생들이 우리말 사랑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한글물결' 김희동(21) 회장은 "젊은층이 시작한 한글파괴 바람을 막기 위해 젊은 세대가 나서는 것은 당연하다"며 "한글을 아끼고 바르게 쓰는 운동이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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