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신문시장(2)-지방지 경쟁력의 비결

입력 2003-10-03 09:02:43

일본의 대표적인 지역지 중 하나인 효고현 고베신문. 조.석간을 합쳐 100만부 가량의 부수를 발행하는 이 신문은 지난 1995년 창사 이래 최대 위기를 맞았다.

고베를 강타한 대지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는 바람에 신문사 또한 본사 건물과 인쇄 공장이 완전히 붕괴됐기 때문이다.

나카노 게이스케(50) 편집부국장은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지만 지진 발생 후 지역민들에게서 받은 감동은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며칠동안 신문을 발행하지 못했고 얼마 뒤 협력 관계에 있는 인근 교토 신문의 도움을 받아 신문을 찍어냈습니다.

정상 발행되는데 6개월이 걸렸죠. 그러나 질이 좋지 못한 종이에 겨우 신문을 찍어 돌렸는데도 부수가 전혀 줄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기간 동안 지역민들의 격려가 줄을 이었고 신문사가 어느 정도 수습된 뒤에는 부수가 오히려 증가했다"며 "지역민들이 지역신문을 정말 사랑한다는 사실에 임직원 모두가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고베신문의 일화는 당시 일본 신문업계에서 지역지의 존재이유가 입증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수도권 집중이 유달리 강하고 주요 뉴스의 상당 부분이 도쿄에서 생산되는 일본에서 지방지가 경쟁력을 가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히로시마 신문 차장이며 전국신문노조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야마네씨는 "대다수 지방지 지면중 도쿄에서 나오는 뉴스가 50% 이상을 차지하지만 그대로 싣는 경우는 일부분"이라며 "국가 정책이나 주요 사건이 발생하면 지역에 미치는 영향이나 파장을 고려해 지역의 이익과 눈높이에 맞는 뉴스를 재생산한다"고 지방지의 경쟁력을 설명했다.

철저한 지역화를 통한 차별화 정책도 지방지가 갖는 경쟁력의 하나다.

고베신문의 경우 1만부에서 1만5천부 정도씩 19개의 지역판을 만들어 효고현 전역에 배포하고 있으며 지역 문화 고수 차원에서 사투리를 그대로 인용한 지면을 별도 제작하고 있다.

지역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실험은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고베신문에서 가장 인기를 얻는 코너는 35년째 이어지고 있는 '동정 코너'. 개인의 대소사 등을 짧은 편지글 형태로 매일 제작하는 동정 코너는 독자들에게는 하루도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고 있다는 것이 신문사측의 설명이다.

역사적으로 신문시장이 가장 먼저 발달한 영국에서도 지역신문은 지역민들의 일상사와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일간지와 주간지 등을 합쳐 전국에서 발행되는 1천300여 개의 신문 중 전국지는 스포츠와 대중지를 포함해 20여개에 불과하다.

영국의 여론은 사실상 지역지가 주도하고 있으며 지역민들은 전국지에 대한 관심을 거의 가지지 않는다.

영국지방신문협회 대변인 마르타 리어리 타너(여)씨는 "전통적으로 지역지에 대한 독자들의 신뢰도가 상당히 높다"며 "지난해 열독률을 조사한 결과 지역지는 전체 성인 중 84.5%인 반면 전국지는 70.5%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지역지들이 강세를 유지하는 원인으로 지역의 이익을 철저하게 대변해 왔으며 지방분권과 지방자치가 완전하게 실행되고 있어 주민들은 런던보다 지역 뉴스에 대한 관심이 더 높은 점을 들었다.

영국의 여론 다원화를 통한 민주주의 발전 전략도 건전한 지방지들에 힘입은 바 크다는 그의 분석이 설득력있게 다가왔다.

또 타너씨는 "전체적으로 광고 시장이 줄어 신문시장이 타격을 입고 있지만 지역신문에 대한 신뢰도가 높아 매출 감소 영향은 전국지보다 훨씬 덜한 편"이라고 말했다.

특히 영국 신문시장이 한국과 다른 점 중 하나는 전국지의 개념이 배포지역만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는 점. 이곳 전국지들은 한국처럼 전국 모든 뉴스를 담고 지방 시장 공략을 위해 지방판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면의 대부분을 런던발 뉴스로 채우고 있으며 독자들도 런던 뉴스를 알기 위해 전국지를 읽고 있다.

언론 산업을 주도하는 미국에서도 전국지로 손꼽을 수 있는 신문은 1980년대에 창간된 유에스에이 투데이와 경제지인 월스트리트저널 뿐이다.

뉴욕타임스나 워싱턴포스트, LA타임스 등도 엄격히 따지면 발행 주변 지역만을 주배포 대상으로 삼는 지방지에 속한다.

재미 언론인 김선명씨는 "미국에서는 지역별로 발행되는 다양한 신문들이 여론을 만들어 내고 있다"며 "미국 신문산업은 지방에 뿌리를 둔 지역지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신문의 위상과 지역 이익은 직결된다.

IMF 외환위기가 휩쓸면서 기업과 금융권이 구조조정의 도마 위에 올라 있을 당시 지역신문들의 선도적 역할로 살아남은 부산 삼성자동차와 대구은행이 대표적인 경우다.

대구와 부산의 상징적인 두 기업은 중앙의 정치 논리와 경제 정책으로 구조조정에 따른 인수합병 대상으로까지 내몰렸으나 지역신문들의 '지역경제살리기' 운동이 강력한 여론으로 결집되면서 결국 살아 남을 수 있었다.

반면 지역신문들이 고사 위기에 처한 광주 등 타 지역 금융권은 끝내 문을 닫아야 했다.

독일 연방정부와 유럽연합에서 문화 산업 관련 정책 조율 업무를 맡고 있는 요헨 리벨 독일 헷센주 장관의 이야기는 지역지의 중요성을 새삼 일깨운다.

고교 졸업 때까지 자기 고향인 마인츠에서 발행되는 지역신문만을 읽고 자랐다는 그는 "성장 과정에서 신문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현안을 제대로 인식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키웠다"고 밝혔다.

프랑스 리용의 최대 일간지인 '르 피가로'의 장클로드 라쎌 편집부국장은 "프랑스는 1980년대 대부분의 전국지들이 지역지를 만들거나 지방판을 강화했지만 결국 실패했다"며 "지역민들의 이익과 목소리를 담은 다양한 지역지들이 결국은 큰 물줄기를 이루어 프랑스의 정책과 여론을 형성한다"고 말했다.

최정암기자 jeongam@imaeil.com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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