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루먼쇼(Truman Show)'는 '천의 얼굴을 가진 사나이' 짐 캐리의 연기가 돋보이는 영화다.
특히 모든 것을 체념한 듯 카메라를 응시하는 장면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 의해 조정되고 있을지 모른다는 설정은 조지 오웰이 예감한 '1984'의 미래사회를 연상시킨다.
스릴과 가벼움이 묻어나는 영화의 외피와 달리, 속으로 파고 들면 현대 문명사회의 많은 폐해를 은유하고 또 조소한다.
◇줄거리
트루먼 버뱅크(짐 캐리)는 아내 메릴과 함께 평범하게 살아가는 샐러리맨. 어린 시절 아버지의 익사를 목격하면서 물에 대한 공포증이 있다.
어느 날 익사했던 아버지를 길에서 만나면서 이상한 일들이 일어난다.
하늘에서 촬영용 조명등이 떨어지고, 엘리베이터가 세트처럼 된 것을 보게 된다.
트루먼은 356일, 24시간 전세계에 생방송되는 '트루먼쇼'의 주인공. 5천대가 넘는 몰래카메라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고, 그가 살고 있는 마을도 거대한 세트장이다.
그의 아내도, 20년 이상된 친구도, 아버지 어머니도 모두 쇼의 연기자일 뿐이다.
우연히 대학 시절 이상형의 여인이었던 실비아를 만난 트루먼은 자신 주변의 모든 것이 가짜라는 말을 듣는다.
트루먼은 실비아가 피지섬으로 떠난다는 얘길 듣고 그녀를 찾아 떠난다.
쇼의 PD는 인공 폭풍을 만들고 폭우를 쏟아부으며 그의 길을 막지만, 그는 세트장의 끝에서 모든 시청자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나누고 진정한 자신의 길을 찾아 떠난다.
◇생각해보기
▲몰래카메라의 폐해
영화에서는 5천여개의 '몰카'(몰래카메라)가 트루먼을 비춘다.
침실을 제외한 모든 행동이 전 세계에 중계된다.
'몰카'는 부아여리즘(Voyeurism.훔쳐보기) 심리가 녹화기술을 만나면서 생긴 신조어다.
'훔쳐보기'란 당사자는 익명성을 가지면서 대상은 낱낱이 노출시키는 것이다.
자신을 숨긴다는 점에서 사악하고, 대상의 사생활을 파괴한다는 점에서 지극히 폭력적이다.
'몰카'로 범죄를 예방하는 측면도 있지만, 개인의 사생활이 누군가에 의해 노출된다는 점에서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최근에는 휴대폰에 달린 카메라까지 '몰카'의 한 수단으로 이용되면서 더욱 사회문제화하고 있다.
더구나 '몰카'가 과거 체제를 보호하기 위해 개인을 강제하던 도청.감청의 범위를 넘어 하나의 오락도구로 확장되고 있는 현실은 심각하다.
△비슷한 주제='에너미 오브 스테이트'(인공 위성과 폐쇄회로 카메라로 국민의 일거수 일투족을 감시하려는 이들과 한 개인의 쫓고 쫓기는 추격전)
▲집단의 광포성
'트루먼쇼'의 시청자들은 트루먼의 일거수일투족에 웃고 운다.
트루먼이 연인과 헤어지면 다같이 아파하고, 곤란한 일을 겪으면 다같이 안타까워한다.
"이것이 진실이다"며 트루먼의 삶을 그리지만, 트루먼은 50억명의 시청자들을 위한 희생양일 뿐이다.
진실의 무게는 믿는 이들의 많고 적음에 따라 변동하는 것이 아니다.
집단의 광포성을 잘 드러낸 장면이 있다.
20년 가까이 사귄 친구와의 대화에서 친구는 "연하고 순한 이 맛이 좋다"며 맥주를 광고한다.
고민을 털어놓는 트루먼의 아픔을 외면하고, 그는 50억명의 시청자들을 위해 스폰서의 광고 문구를 늘어놓는다.
군중 속에서의 고독을 잔인하고도 처절하게 그린 장면이다.
△비슷한 주제='전쟁의 사상자들'(베트남전에 참전한 군인의 범죄행각을 통해 진실을 은폐하려는 집단과 이에 맞서는 한 군인의 대결), '어퓨굿맨'(군 병영에서 사망한 군인의 진실을 파헤쳐나가는 변호사를 통해 군대라는 집단의 비이성을 고발한 작품)
▲인간의 자유의지
트루먼은 물을 두려워한다.
바다로 둘러쳐진 씨 헤븐을 벗어나려는 트루먼의 자유 의지를 제거시킨 것이다.
자유의지는 입력된대로 움직이는 기계와 차별화시키기 위해 만들어진 개념이다.
자유의지는 인간이 존엄성을 갖는 근거다.
자유의지에 대비되는 것이 결정론이다.
결정론은 근대 이후에 형성된 '기계론적 세계관'의 영향을 받았다.
이는 세계를 철저하게 인과적인 메카니즘에 의해 운행되는 하나의 정밀한 기계로 파악한다.
물을 두려워하는 치명적인 약점을 극복하고, 폭풍우에 맞서 싸우는 트루먼은 기계와 인간, 결정론과 자유의지의 불꽃 튀는 대결이다.
자신을 존중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모습은 트루먼(truman)이 자유의지를 가진 진정한 사람(truth man)으로 태어나는 것을 보여준다.
△비슷한 주제의 영화=카타카(열성 인자로 태어난 한 남자가 태생의 한계를 딛고 우주비행사가 되는 과정을 스릴넘치게 그린 SF영화), '쇼생크 탈출'(아내를 죽인 누명을 쓴 은행원의 자유를 향한 대 탈출극)
◇이름 속 의미 찾기
▲트루먼 버뱅크=트루먼(Truman)은 TV쇼의 주인공이 아닌 진정한 한 인간(Truth man)이라는 것을 은유하는 이름이다.
'버뱅크'(Burbank)는 LA 인근의 도시. 영화 촬영과 TV산업의 중심지로 월트 디즈니를 비롯해 컬럼비아 픽처스, 워너브러더스 등 메이저 영화사가 자리잡고 있다.
주인공과 TV쇼를 자연스럽게 연결시켜 준다.
무엇보다 사계절 없이 똑같은 날씨의 단조로운 곳으로, 가공된 도시에 살고 있는 주인공의 환경적 측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크리스토프=트루먼쇼의 연출자. 영화 속에서는 신과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그리스도(Christ)를 연상시키는 이름. 'Christof'를 뜯어 보면 'Christ of', 바로 '예수로부터'가 된다.
▲씨 헤븐=바다로 둘러쳐진 거대한 세트장. '천국'(Heaven)이란 이름에서 한 인간성을 파괴시킨 인간들의 잔인성을 드러내준다.
트루먼이 떠나려고 하자 연출자는 신의 목소리로 "천국으로 돌아가라"고 말한다.
◇매트릭스와 트루먼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들어 놓은 사이버 공간이고, '트루먼쇼'는 인간이 만들어 놓은 세트장이라는 점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둘 다 현실이 아닌 가공의 공간이라는 점에서 유사점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현대 철학 사유의 한 논쟁거리인 '시뮬라크르'를 엿볼 수 있다.
'복제의 복제'를 뜻하는 이 말은 플라톤이 처음 사용했다.
진정한 세계인 이데아(원본)가 있고, 우리가 사는 현실은 이데아의 복제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복제된 현실을 또 한번 복제한 것이다.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1925~1995)는 전통 철학 관점에서 보면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는 순간적인 것들을 하나의 사건으로 보고 사유대상으로 삼았다.
예를 들면 "영화 '스캔들'이 개봉했다는데..."라고 하면 그 속에는 "당신과 같이 '스캔들'을 보고 싶다"는 의미가 담긴 것이다.
이데아의 복제에 불과한 '시뮬라크르'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다.
실제보다 더 실제같은 가상 공간을 얘기하면서 '시뮬라크르' 개념이 도입된다.
워쇼스키 형제는 영화 매트릭스 속 주인공 네오의 대화에 장 보드리야르의 저서 '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을 언급하는 등 대중문화와 포스트모던시대 고급 이론가들과의 대화를 시도했다.
김중기기자 filmtong@imaeil.com
◇논술.면접 관련 문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몰카와 익명의 폭력성에 대한 사회적 대응방안을 말해 보시오.
▲정보화 사회의 사생활 침해와 대응책을 말해 보시오.(2003 경북대 인문계열 자율전공부)
▲소설 '1984'에서는 절대권력을 가진 지도자 빅 브라더가 개인 생활의 감시, 사상 통제를 목적으로 모든 주민들의 사생활을 통제하며 언어의 간략화를 추구하고 있다.
소설에서 예상한 바와 같이, 앞으로 빅 브라더에 의한 사생활 감시가 출현할 수 있다고 보는가?(2003 홍익대 인문계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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