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복서다

입력 2003-10-03 09:05:43

2003년 1월 24일 잠실 학생체육관. "홍코너! 플라이급 일본챔피언, 세계랭킹 9위, 9전 7승 3KO, 야시마 유미!" "청코너! 전 플라이급 한국챔피언, 세계랭킹 10위, 4전 4승 2KO, 이인영!"

'드디어 내 이름이 불리었다.

세계로 향하는 첫 관문을 열어준 그녀가 고맙다.

감사의 꽃다발을 건넸다.

그녀는 전혀 긴장하는 눈치가 아니다.

예쁜 여자는 긴장도 하지 않는 것일까? 기 싸움에 지면 안되는데…'. 우리나라 최초 여자프로권투선수 이인영은 그렇게 세계를 향한 첫 주먹을 날렸다.

'나는 복서다'(들녘)는 그녀의 삶과 꿈을 고스란히 담았다.

고등학교 졸업 후 그녀는 긴 어둠의 터널 속을 헤맸다.

미용사 보조, 봉제공장 여공, 학원 셔틀버스 기사, 택시 기사, 트럭 운전사 그리고 알코올 중독자…. 그렇게 서른을 맞았다.

집에서나 세상에서나 반갑지 않은 막내딸과 선머슴아같은 여자는 미운 오리새끼였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링 위에서는 남녀가 따로 없다.

링이라는 냉혹한 승부의 세계에 존재하는 건 단지 복서다.

어린 시절부터 온갖 남녀차별을 온 몸으로 통과해온 나는 나를 남과 여가 아닌 복서로 인정해주는 링을 사랑한다".

그녀는 링에서 길을 찾았다.

그리고 9월 27일…. 그토록 그리던 세계 정상에 우뚝 섰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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