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서 일고 있는 '해외이민' 붐은 국내언론에서뿐만 아니라 해외언론에서도 적지 않은 관심거리다.
해외이민의 희망자 60%가 20, 30대라고 한다.
한창 나이에 한국을 버리고 캐나다, 미국, 호주 등지로 떠나려는 사람들. 더욱이 암암리에 진행돼오던 '해외 원정출산' 문제마저 들춰지니 한때 그렇게 떠들어대던 '세계화'의 결실이 결국 이것인가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잘 알려진 대로 사람들이 한국을 떠나려는 주된 이유 중의 하나는 자녀교육 문제이다.
척박한 사회.경제 환경, 사교육비의 증가 등으로 점점 더 살기 힘들어질 '이 어두운 나라'를 버리고 '밝고 희망찬 저 나라'로 가고싶다는 것. 좋은 환경에서 내 자식을 남의 자식보다 더 나은 엘리트로 키우자는 것. 불안한 미래를 자식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는 것. 이런 것들이 왜 그렇게 불순한가? 과연 우리사회는 이에 대한 충분한 대답의 논거는 갖고 있는가? '중요한 것이 나인가? 남인가? 민족인가 세계인가?' 라고 묻는 사람에게 대한민국은 어떤 속시원한 말을 할 텐가?
그렇다.
우리는 궁색하고 낡은 강의안을 버리고 교육과 경제의 원점으로 돌아가서 미래를 향한 교안을 다시 짜야 한다.
그래서 국가는 우리 사회가 왜 이 모양 이 꼴이 되었고,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차근차근 해명해가야 한다.
일찍이 공자(孔子)는 '가르침 앞에 차별은 없다(有敎無類)'고 했다.
북송의 주렴계(周濂溪)는 '배움에 의해 누구나 이상적인 인간(聖人)이 될 수 있다'는 큰 비전을 제시했다.
과거 우리에겐 배우지 않고서는 제대로 사람구실을 할 수 없었던 때가 있었다.
실제로 역사상에서 교육만큼 확실한 신분이동, 장밋빛 미래를 보장해주는 것도 없었다.
교육을 통해서 남들보다 더 확실한 무언가를 챙기겠다는 사람이 있는 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전통은 계속될 것이다.
교육 열병 뒤에는 '못 배운 게 죄'라는 교육폭력의 우울한 유통망이 자리해 있다.
유식에 의한 무식의 차별, 무학(無學)의 열등감과 죄의식의 역사 속에서, 무식자들은 유식자들로부터 얻은 고통과 상처의 경험을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자녀교육에 일생을 바친다.
그런데 문제는 단순치 않다.
우리의 교육은 진리와 자아의 탐구 이전에 돈과 힘을 보장하는 확실한 도구로 이미 변질해 있다.
교육에는 '돈'이 든다.
또 투자된 시간과 돈에 비례해서 미래도 보장된다.
그래서 교육은 차츰 '돈 놓고 돈 먹기' 식으로 교육을 속되게 상품화시켰다.
돈이 되는 곳엔 투기꾼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들은 돈이 되는 곳이면 국내건 해외건 상관없이 투자하러 떠난다.
교육을 위한 이민이니 원정출산이니 하는 뉴스가 이상할 게 하나도 없다.
교육은 '피의 네트워크(血緣)'만큼 끈끈한 '먹물(지식)의 네트워크(學緣)'를 형성한다.
'한번 ○병은 영원한 ○병'이라는 말처럼, 명문 먹물의 원산지 표시는 혜택.대우의 확실한 차별화, 서열화를 가져오며, 역사에 문신(文身)처럼 새겨져 보전된다.
이런데 왜, 누가, 교육에 목숨을 걸지 않겠는가?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현재 한국에선 명문이건 비명문이건 대학은 이미 실업자 양성소처럼 변했다.
대학원을 졸업하고 박사학위를 받아도 설 자리가 없다.
'먹물의 네트워크'에 비상이 걸렸다.
출세라는 면으로 본다면 교육이라는 구명정에는 탑승인원이 늘 제한되어 있다.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기 마련이다.
그래서 분명 교육은 행복한 삶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며, 모든 행복을 보장하는 만병통치약은 아니다.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살아있는 자들은 당연히 먹고살 곳으로 떠난다.
그 곳이 극락이고 정토이며, 밥도 못 먹고 사는 곳은 지옥이고 예토이기 때문이다.
과거 먹고살기 위해 고향을 떠나던 우리 사회의 기억은 흘러간 유행가로 남아 있다.
그 비애의 악보를 가슴에 새기고 유토피아를 향해 떠나는 자들에게 돌을 던지며 무차별 마녀사냥을 해댈 자격이 있는 자는 누구인가? 솔직히 말하면 한국을 뜨는 전례를 남긴 것은 우리 사회의 힘있고 가진 자들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던 자들이다.
그러나 막무가내 고향을 떠나는 자들의 단견에 한 두 마디 이런 말을 던지고 싶다.
유토피아(utopia)는 '좋은(eu-)' 그러면서도 '없는(ou-)' '장소(toppos)'라고, 장자(莊子)의 '무하유지향(無何有之鄕)'이란 이상향은 '어디에도 있지 아니한 곳'이라고.
최재목(영남대 교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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