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가야산신 정견모주

입력 2003-09-23 09:10:55

고령 방향으로 차를 달리다보면 청명한 하늘 한가운데 정기를 품고 시야에 떠오르는 유백색의 산봉우리들이 있다.

바로 조선팔경의 하나인 가야산이다.

'택리지'에 보면 가야산의 뾰족한 돌 모양을 불꽃같이 빼어났다고 하였는데, 볼 때마다 참으로 훌륭한 비유라고 감탄하게 된다.

정견모주(正見母主). 가야산신의 아름다운 이름이다.

이 정견모주는 단군을 낳은 웅녀나 박혁거세를 낳은 서술신모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라시아 대륙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성모성처녀사상의 영향을 받은 여신이다.

최치원이 '석리정전'에 기록한 것을 보면, 가야산신 정견모주는 천신 이비가에 감응되어 두 아들을 낳았다.

형은 얼굴이 해처럼 빛나 뇌질주일이라 불렀고 아우는 얼굴이 하늘과 같이 푸르러 뇌질청예라고 불렀다.

두 아들은 각각 대가야의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수로왕이 되었다

정견모주설이라 불리는 이 이야기가 바로 대가야의 건국신화이다.

대가야 건국신화의 특징은 다른 신화들이 천신을 중심으로 서술된데 반해서 산신인 정견모주를 부각시킨다는 점이다.

그 예로 대가야의 마지막 태자인 월광태자를 '천신 이비가의 마지막 손'이 아니라 '정견모주의 마지막 손'이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다.

즉 신화에 따라 대가야의 왕들도 정견모주의 후손으로 자처한 것이다.

이 사실을 알고나면 한가지 의문이 풀어진다.

즉 다른 고분과는 달리 왜 유독 대가야의 고분은 해발 270m가 넘는 고지대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아마도 금산재를 넘어오면서 고지에 자리잡고 있는 고분군을 보고 한번쯤 의문을 가져본 사람도 많을 것이다.

대가야의 왕족들은 가야산신의 후손으로서 평지나 구릉이 아닌 높은 산에 묻히기를 원한 것이다

지금 바라보는 가야산에서 정견모주의 자취는 찾아볼 수 없지만 역대 문인들이 가야산을 두고 읊었던 시구절은 아직도 남아 있다.

"가야산 좋단 말 십 년 동안 듣기만 했네. 내가 이제 오니(…) 다생을 고화 속에 괴로워하던 것, 왜 이다지도 부끄러운가"(강희맹).이상히 가야대 부총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