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 전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유네스코 총회 때 '세계 문화 다양성 선언'이 채택됐다.
문화를 단순한 상품으로 보아서는 절대 안 되며, 문화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은 윤리적인 의무이자 인간의 존엄성과 관계되는 것임을 천명한 게 그 골자였다.
이 때문에 다양한 문화를 생산하고 널리 보급하는 데 이바지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줘야 하며, 지원이나 적절한 규제 등이 따라야 한다고도 했다.
역사를 통해 보더라도 문화와 예술은 그런 자유로운 토양에서 찬연한 꽃을 피웠다.
창의성의 촉매로서의 문화 정책은 다양성을 포용해야 하는 까닭도 거기에 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문화계의 혁명이 진행되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 '문화 권력'을 비판하는 진영에 섰던 사람들이 반대로 속속 새로운 문화 권력의 자리에 오르는가 하면, 거기에 반발하는 소리도 높아가고 있다.
우리는 8.15 해방 공간에서 문화계가 좌우(左右)로 나뉘어 격렬한 권력 투쟁을 벌였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권력에 예속된 예술이 얼마가지 않아 무너지는 모습도 보아 왔다.
▲어제 연극인 100명이 정부의 민예총 편파 인사에 항의하는 성명을 발표, 문화계에 큰 파장과 확산이 예상된다.
이번 성명 발표는 보혁(保革) 대결을 넘어 현정부의 문화 정책 전반에 대한 강력한 문제 제기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보수.진보 차원을 넘어선 듯한 이들이 '정치 권력을 이용해 문화계의 질서를 인위적으로 재편'하려 한다고 꼬집었듯이, 그 위기감이 어느 정도인가도 짐작케 한다.
▲현정부는 그간 문예진흥원.영상자료원.국립국악원.국립현대미술관 등 정부 산하 주요 문화단체 기관장들을 진보 성향 인사들로 바꿔온 게 숨길 수 없는 사실이다.
이번 성명은 또한 얼마 전 '전국 대학 국악과 교수 포럼'의 국립국악원장 임명 무효 주장에 이어 터졌으며, 정부가 '문예진흥원'의 '문화예술위원회' 체제 전환 표명이 기폭제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살아남자는 소승적 차원'이 아니라 문화계 전체 여론의 상징적 의미마저 없지 않아 보인다.
▲민예총 측은 편중 인사와 관련해 개인의 역량이 반영됐다지만, 그렇게 보는 문화계 인사들이 과연 얼마나 될는지.... 지난 1월 현정부 문화 정책에 관련한 진보계의 한 세미나에서 '그동안 가득권을 누린 단체들은 발을 못 붙이게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 바도 있다.
새로 발탁된 단체장 가운데는 실력과 인품을 갖춘 경우도 있겠지만 진보 세력이 아니었더라면 그 자리를 맡게 됐을 거라고 자신하는 인사들이 얼마나 될까. 요즘 문화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서 해방 공간의 아픈 악몽이 떠오르는 건 지나친 기우이기만 할는지....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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