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안에 썩는 냄새가 진동해 잠을 잘 수가 없을 지경이야".
정옥엽(73) 김경희(82.대구 남산2동) 할머니는 요즘 하루 하루 나기가 벅차다.
한달째 방구석에서 새우잠을 자다 그나마 최근엔 태풍 '매미' 때문에 부엌으로 거처를 옮겼다.
여름 내내 내린 비가 6평짜리 방 벽의 갈라진 틈을 헤집고 스며들어 바닥과 벽이 눅눅했는데, 태풍 '매미'가 할퀴고 간 뒤엔 장판까지 물방울을 만들었고 벽에서는 빗물과 벽지가 만들어낸 검은 곰팡이의 쾨쾨한 냄새가 진동했다.
더구나 정 할머니는 교통사고로 석달 동안 병원에 입원했다가 지난달 퇴원했기 때문에 몸이 말이 아니다.
서른살에 남편을 여읜 정 할머니는 3년전까지 경산의 모대학 앞에서 붕어빵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오다 5년 전 성당에서 만난 김 할머니와 의지하며 정부 보조금으로 하루 하루를 버티고 있다.
최근 감기가 든 김 할머니가 이웃집으로 잠시 거처를 옮긴 바람에 아픈 몸에다 외롭기까지 하다.
정 할머니는 "썩는 냄새 때문에 잠을 자고 나면 목도 따갑고 아프지만 혼자 있다는게 더 싫다"고 했다.
한옥 4평 남짓한 방에서 9년째 살고 있는 신갑균(70.대구 동산동) 할머니. 태풍이 대구를 강타하던 12일 뜬 눈으로 밤을 지샜다고 했다.
이날 밤 9시쯤 갑자기 '덜커덩'하는 소리가 나더니 플라스틱 지붕 물받이가 날아갔고 전기도 끊겨 버린 것. 신장이 좋지 않아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받아야 하는 신 할머니는 아직도 그 때만 생각하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신 할머니는 물받이가 부서진 것보다 가스레인지가 더 문제라고 했다.
"그을음이 많아 음식하기가 너무 힘들다"며 "돈을 줄 테니 사다줄 수 없느냐"며 하소연했다.
달성공원 뒤편 언덕배기에서 10년째 홀로 살고 있는 이모(69.대구 비산동) 할머니는 12일 밤 가슴을 쓸어내려야만 했다.
이날 오후 8시30분쯤 갑자기 '꽝'하는 소리와 함께 집 담벼락이 무너졌고, 누전차단기도 떨어져 나가 전기마저 끊겨버린 것. 촛불을 켜고 바깥으로 나가려고 했지만 비바람이 워낙 거세 애꿎은 이불만 부여잡고 밤을 지샜다.
다음날 할머니는 이웃 20여가구 주민들이 모두 대피하고 홀로 동네를 지켰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할머니는 "70평생을 살면서 그렇게 겁이 난 적은 처음이었다"며 "담벼락에 놓아두었던 세탁기가 부서져 걱정이다"고 말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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