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났다.
지난 며칠동안 4천500만 국민들은 하나같이 인정많고 예법을 알며 자애롭고 헌신적이면서 인내의 미덕까지 갖춘 모범적인 국민들이었던 것 같다.
비바람속 왕복 스무시간 가까운 귀향길, 귀성길을 마다않고 오가고 이 어렵다는 불경기속에도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는 빠짐없이 챙기며 인정을 나누었다.
성묘와 차례상 앞에서 신위봉안, 헌잔, 참신 등 집안 법도에 따라 예(禮)를 다하는 모습들도 일상속에서 준법과 질서를 다투고 시비하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오랜만에 자식 손자 얼굴을 만난 고향집 부모님의 자애로운 덕담과 형제자매의 정담속에는 일상에서 보았던 다툼과 논쟁의 긴장 같은 건 먼 얘기였다.
친지 형제끼리 멀리서 휴대전화로는 미처 털어 놓기 어려웠던 속마음도 무릎 맞대고 청주 한잔 나누면서는 쉬 털어놓고 일상속에서 제대로 챙겨주지 못했던 서운함과 미안함도 풀어보는 화해의 만남이었다.
남과 다투거나 괴롭히지 말고 우애있게 신의 지키면서 법대로 착히 살아라는 평범한 부모님의 귀따가운 다짐도 일상속에서는 잔소리로 들었지만 한가위때는 삶을 일깨워 주시는 자애의 말씀으로 들을 줄도 알았다.
어느 누구도 한가위 연휴동안만은 그처럼 인정있고 희생과 양보, 화합을 알며 예법을 소중히 여기지 않은 사람은 없었던 셈이다.
이제 다시 모든 것이 일상으로 돌아왔다.
올 추석만은 한번쯤 또 그저 그렇게 '끝나버린 명절'이 아닌 우리의 일상을 성찰해 보는 명절로 되짚어 보는 것은 어떨까.
명절 끝, 각자의 일상으로 돌아온 지금 고향집 대문을 나서 귀경길에 오르는 순간, 또 일터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에 우리는 추석연휴동안 나눈 덕담의 정과 차례를 모시던 경건함과 예법의 도를 시나브로 잊어버리기가 십상이다.
또 해마다 그렇게 겪어온 게 우리의 솔직한 삶이었다.
그러나 만약 우리 모두가 한가위 때 조상님과 가족 친지들과 나눴던 그 인정과 차례의 예를 다하던 그 마음가짐의 한 조각만이라도 남과 부딪히는 일상속에서도 그대로 보여주고 대해줄 수 있다면 우리 사회 또한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모든 명절은 사람들에게 잠시나마 꿈을 심어주고 아름답고 소중한 것만을 추구케 한다.
차례상에 배를 올리지 않는다는 중국의 추석풍습도 배(梨)의 이(梨) 발음과 헤어질 이(離)자의 발음이 같아서다.
집안이 한데 모이는 단원(團圓)의 분위기와 꿈을 해치는 것은 과일조차 가려 놓아서라도 막겠다는 염원이 담겨있다.
그만큼 명절엔 모든 이들이 화합과 꿈, 그리고 미덕만이 충만하기를 바란다.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 역시 예전에는 물질적인 풍요를 염원했던 말이라면 오늘날에는 일상에서의 마음가짐이 한가위 때 만큼만 돼 준다면 우리사회가 그만큼 밝아지리란 염원이기도 하다.
며칠동안이나마 정치판의 싸우는 꼴대신 웃는 얼굴들만 봐서 눈이 즐거웠고 악을 쓰는 비방과 힐난 대신 덕담만 듣느라 귀도 행복했었던 한가위였다.
당장 오늘부터 눈과 귀가 다시 시달릴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한가위만 같아 달라는 바람이 그저 해보는 소리가 아닌 것이다.
함께 더불어 늘 한가위처럼 살아가보자. 왜 차례상 앞에서 물러만 서면 사람이 달라진 듯 마음들이 풀려버리고 예법을 팽개치고 살아야 하는가. 밤한톨까지 나눠먹고 선물꾸러미 나눴던 인정이 명절 지나자 금세 메말라 버려야 하는가. 10시간 넘게도 고향길을 가던 인내가 왜 일상의 길거리에서는 한순간도 못참고 차선을 넘으며 조급해져야 하는가.
더이상 명절 때 마음과 일상 때의 마음이 다른 이중적인 생활은 벗어던져보자. 1년내 늘 한가위만 같은 삶을 산다면 틀림없이 세상은 아름다워진다.
우리는 바로 며칠전에 해냈듯이 마음만 모으면 늘 한가위처럼 지낼 수 있는 본성(本性)을 지닌 민족이다.
그런 자부심과 자신감으로 IMF이후 다시 찾아오고 있는 이 난국을 밀치고 나아가자.
김정길(부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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