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전...강물 범람 우려...'공포의 밤'

입력 2003-09-13 09:19:50

사상 최강의 폭풍과 폭우를 몰고온 태풍 '매미'가 대구.경북을 통과한 12일 밤 시도민들은 공포에 휩싸여 밤을 보냈다.

태풍이 동해로 빠져나갈 때까지 TV특보를 시청하면서 초조해 했고, 고향 집으로 안부를 묻거나 집 안에서만 머물 수 없어 거리로 나가 동네 표정을 살피며 서성여야 했다. 대구 팔달동 박영철(52)씨는 "금호강 물이 제방에 가득 차는 것을 보고 가족들을 인근 고층 아파트 친척집으로 대피시켰다"면서 "강물이 범람할까봐 밤을 꼬박 샜다"고 했다.

대구 4만7천700여가구 등은 정전으로 칠흑같은 어둠까지 덮치자 공포심이 더 커졌다. 시내 가로등도 상당수 꺼져 도심 역시 암흑천지가 됐다. 더우기 대구에서는 12일 밤 9시30분쯤 종각네거리 신호등을 시작으로 효심네거리, 봉덕초교네거리, 반야월삼거리, 대구역네거리, 와룡시장네거리 등 6곳의 신호등 작동이 마비돼 교통까지 혼란에 빠졌다. 정전으로 인한 것까지 합치면 30여개가 작동 중단된 것. 그 중 3개는 완전히 부서진 것으로 확인됐다.

대구 대명동 앞산 안지랑골 밑 복개도로 옆에 사는 박모(50)씨는 밤 10시쯤 바람이 거세지자 마당의 나무가 넘어져 담장 등이 잇따라 도괴될까봐 불안해 하던 중 갑자기 쿵쾅거리는 소리와 함께 집이 들썩거려 거리로 뛰쳐 나갔다. 나중에 알게된 원인은 쏟아져 내리는 물이 너무 많아지면서 앞산에서 바위들이 복개도로 밑으로 떠내려 가면서 복개천 도로 바닥을 치고 있었던 것.

13일 아침 출근길에 박씨는 안지랑네거리까지로 이어지는 복개도로 노면이 큰 충격을 받아 터져버렸음을 알았다. 주민들은 13일 새벽 0시쯤 안지랑시장 입구에서 앞산쪽으로 150m 가량 올라간 지점에서 도로가 갈라지면서 물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고, 이어 돌.자갈 등이 튀어나와 순식간에 2차로를 가득채웠다고 했다. 덩달아 인근 맨홀에서도 물과 돌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뒤이어서는 수압을 견디지 못한 복개도로가 앞산 쪽으로 올라가며 갈라지기 시작했고 안지랑골 입구에서는 복개도로 벽면이 터져 도로가 움푹 파였다.

장형희(55.대명9동)씨는 "밤 10시쯤 땅이 울리고 물 속에 돌이 굴러가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고 이어 땅이 흔들리기 시작하더니 도로에서 물이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터진 도로 위로 쏟구친 물은 복개도로를 따라 안지랑시장 입구 쪽을 덮쳐 점포들에 물이 가득찼다. 김인수(76)씨는 "물이 무릎까지 차고 차가 떠내려 갈 정도였다"며 "복개도로 밑 개천으로 돌과 자갈 등이 함께 떠내려 오다 중간에서 막히자 압력을 받아 복개 노면자체가 터져 버린 것같다"고 했다. 한 주민은 "수도관이 터진 경우는 봤어도 도로가 터진 경우는 처음"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박씨가 이날 아침 지나쳐 온 도심 출근길 모든 구간에서는 밤새 태풍에 할퀸 가로수들이 떨어뜨린 입사귀들과 은행 알맹이들, 부러진 가지들, 쏟아져 내려 쌓인 토사들로 도시 전체가 전쟁을 치른듯 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사진설명)제14호 태풍 '매미'가 대구시 전역을 휩쓸고 지나간 13일 수성구 상동교~중동교 사이 신천변이 폭격을 맞은 듯 가로등도 쓰러져 있다. 정운철기자 woon@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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