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잦은 비에도 가을은 저만큼 다가선다.
비 사이로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에 고추도 물들고, 수수도 고개를 숙인다.
여물어 가는 벼이삭과 함께 가을 정취가 누리에 가득한데 마음 한 구석엔 애잔한 슬픔이 함께 한다.
떠나는 아쉬움에 눈시울 붉히던 북한응원단의 모습이 눈에 선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우리의 소원인가, 소원이라면 그 통일은 가능한가, 가능하다면 누가 언제 어떻게 통일을 이룰 수 있을까…. 끝없이 물음을 던져 보지만 시원한 답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런데 지구촌 젊은이들이 우정과 꿈을 마음껏 펼쳤던 지난 U대회에서 작으나마 한 가닥의 희망과 기대를 보았다.
대회의 주제 '하나가 되는 꿈'과 슬로건 '벽을 넘어 하나로, 꿈을 펼쳐 미래로'가 바로 우리가 지향해 나갈 통일의 좌표와 연결되는 것이었다.
국내외의 관심을 모았던 '북한응원단'의 모습도 그 중 하나이다.
그들이 U대회에 기여한 몫은 논외로 하고, 그 많은 관중과 기자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어 환호하며 감격한 그 이유는 무엇이었던가? 용모와 차림새 그리고 동작 하나 하나가 구경거리요 이야기 거리였다.
그러나 그것뿐이라면 그들은 또 하나의 소품에 불과하다.
나팔을 들고 꽃다발을 흔들며 '핏줄도 하나, 언어도 하나, 문화도 하나, 우리는 하나'라는 구호를 외치는 것을 보며 감정이 교차했다.
아직도 저런 획일이 가능하구나 라는 의아로움은 접어두고 '우리는'이라는 나팔소리에 '하나'라는 메아리로 화답을 하는 것을 보며, 희열에 젖어든다.
하나가 되는 것이다.
왜 그랬을까!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는가? 청초한 모습과 야무진 태깔로 그들이 펼쳐 보인 멋들어진 아름다움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간직된 전통문화의 미의식을 일깨우고, 이것이 마음을 열게 한 것이 아닌가 생각해본다.
우리는 지난 일세기 동안 일본과 선진국의 보편가치에 맹종하는 '식민지문화 시대'에 안주하여 우리의 전통을 몹쓸 것, 버려야 할 것의 대명사로 취급하며 우리에겐 의지할 전통이 없다고 자괴하며 살아왔다.
서구에서 쏟아져 들어온 칙칙하고, 어둡고, 무디고, 일그러지고, 발가벗은 저질문물이 마치 현대적인 것인 양 그것에 인공미를 가미하기에 급급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U대회를 통하여 아름답고, 품위 있고, 곱고, 맑고, 정답고, 진실한 우리의 특수한 전통미가 민족의 동질성과 정체성의 바탕이 됨을 깨우치게 되었고, 이것이 우리의 것만이 아닌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것이 북한 응원단이 우리에게 선물한 통일에의 꿈이라면 지나친 평가일까?
이와는 달리 북한 응원단은 우리에게 통일을 가로막는 슬픈 선물도 남겼다.
'현수막사건'에서 그들이 보여준 격렬한 항의와 오열하는 모습은 통일에 대한 기대감을 크게 손상시켰다.
마치 사이비종교집단 광신도와도 같은 모습은, 응원 때 보았던 아름다운 율동의 모습마저 로봇의 동작으로 여겨지게끔 감격을 퇴색시켰다.
'반갑습니다.
고맙습니다'는 인사가 한 순간에 허구가 된 느낌이었다.
물 붓듯 쏟아 부은 햇볕정책의 효과가 이 정도구나 하고 실소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지난 50여년 동안 공산주의를 각색한 김일성주체사상, 즉 '김일성종교'를 믿고 살아온 신자들이란 점에서 큰 가슴을 갖고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먹여주고 키워주고 길러주신 은혜에 매달려 안타까이 살고 있는 모습이 그저 안쓰럽다.
이보다 더 큰 문제도 있다.
허울뿐인 주체사상의 허상을 냉철하게 직시하지 못하고 좌파관념론에 빠져 환상의 통일을 꿈꾸는 허상집단이 우리 앞에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낭만으로 삼아 그 이념적 모험성에 놀아나며 혁명적 정열을 불태우는 그들을 보면 걱정에 앞서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이러한 것들은 바로 통일을 가로막는 슬픈 장애물이다.
이러한 슬픔을 씻어내고 통일의 꿈을 이룰 수 있는 힘은 무엇인가? 군사적인 힘.경제적인 힘도 이데올로기의 힘도 '민족문화의 힘'에는 못 미치리라는 생각이다.
수 천년 동안 고유한 영토와 주권 그리고 혈통을 보존하며 한민족 역사를 이어온 것은 무력도 재력도 이데올로기도 아닌 문화에서 얻은 지성의 힘, 즉 지략과 지혜였으리라.
그간의 역사적 시련에도 불구하고 큰 줄기로 이어져 내려온 소중한 우리 민족문화의 유산을 자산으로 삼아 통일논리와 통일교육에 접목시킴으로써 통일 민족국가의 원동력으로 성숙시켜 나간다면, 통일은 불가능한 것도, 그리 먼 것도 아닐 것이다.
민족이라는 토대에 자유와 평등, 복지와 평화의 열매가 탐스럽게 맺어질 통일의 그날을 남북이 함께 준비한다면 더욱 앞당길 수도 있을 것이다.
북한과 남한이 떨어져 살며 반목하는 상태에서, 곁에 살면서 서로 존중하는 상태에로, 한 발 더 나아가, 힘을 합해 함께 신나게 사는 상태로 자연스레 이어질 수 있는 작은 가능성을 이번 U대회 메아리 응원에서 찾아보았다.
김복규(계명대 교수 한국정부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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