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위가 며칠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을 맞아 전국 방방곡곡이 고향을 찾는 '민족 대이동'의 차량들로 어김없이 한바탕 지독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다.
이 같이 평소에는 한달음에 갈 수 있는 고향도 밤을 새워가며 한가위에 다녀와야 사람 노릇을 했다는 위안을 얻는 게 우리네 인심이다.
만사를 제치고 조상의 제사만은 고향 땅에서 모시고, 이 때 어른들을 찾아봬야 직성이 풀리는 마음들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와는 대조적으로 고향과 조국을 등지고, 그것도 좀처럼 오기 힘든 먼 나라로 떠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현실이다.
▲하기야 '인류의 역사는 이주의 역사'라 할 수 있다.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인류의 조상들은 먼 길을 이동해 유럽과 아시아에 정착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사는 건 조상들이 이곳으로 이주해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의 이민 열풍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든다.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절망감에서 비롯된, 굳이 괄호를 쳐보자면, '절망 이민'이 IMF 외환 위기 이후 늘어나 끊임없이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서울의 한 홈쇼핑 업체가 내놓은 이민 상품들이 순식간에 동이 났다는 보도가 보인다.
현대홈쇼핑의 4일 캐나다 매니토바주 이민 알선 서비스에는 90분만에 2천935명의 상담 신청자(매출액 530억원)가 몰려 우리나라 홈쇼핑 사상 단일 방송 최고 액수를 기록했다.
이에 앞서 지난달 28일의 첫 방송 때도 80분만에 983명이 신청(매출액 175억원)해 이민 열풍을 실감케 했다.
▲'이민은 도피가 아니라 도전'이라는 시각도 없지는 않다.
글로벌 시대에 보다 나은 삶을 위한 길을 해외에서도 찾는다면 수긍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심리적 탈출구로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구나 이민 상품 구매자의 60% 이상이 20~30대라니 기가 찬다.
나라의 장래를 짊어져야 할 젊은이들 사이에 '탈 한국' 바람이 거세진다면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이민 경향은 시대에 따라 변해 왔다.
1960년대까지는 유학생.전쟁고아.국제결혼자 등이 주류였다.
70년대까지도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생존 이민'이 대부분이었다.
80년대부터는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해외로 떠나는 선진국형 이민으로 바뀌기 시작해 '화이트 칼라 이민' 시대가 열리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의 이민 열풍은 사정이 또 달라졌다.
직장 퇴출, 취업난, 부정부패에 대한 환멸, 잘못된 교육제도 등이 주요 원인이라 한다.
이 절망감을 떨칠 수 있는 길은 여전히 요원한 것일까.
이태수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