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 열풍에 밀려 사라져 버린 줄 알기 십상인 추억의 삐삐(무선호출기)가 다시 부활하고 있다
도로공사 직원 등 몇몇 특수직종 종사자나 전화벨 소리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 등을 중심으로 사용자가 오히려 늘고 있는 것.
공무원인 엄모(58)씨는 휴대전화를 갖고 다니지만 늘 꺼놓은 채 삐삐를 통해서만 연락을 받는다.
휴대전화는 삐삐에 나타난 번호를 보고 전화를 걸 때만 쓰는 것. "시도때도 없이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가 싫어 내가 골라 응답할 수 있는 삐삐를 계속 쓰고 있다"고 했다.
경기도 용인의 김일용(23)씨는 2주 전 휴대전화를 해약하고 삐삐 회사에 새로 가입했다.
한달에 7, 8만원씩이나 나오는 휴대전화 요금이 부담스러워 바꿨다는 것. "삐삐만으로도 얼마든지 연락이 가능해 별다른 불편이 없고 한달 요금도 1만원이면 족하다"고 좋아했다.
인터넷에는 삐삐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까지 결성돼 있을 정도. '삐사모'(cafe.daum.net/ilovebeeper)에서는 갖가지 삐삐 사용 이야기, 구입하기 어려운 삐삐 구하는 법, 전에 쓰던 삐삐 재활용법 등의 이야기와 정보가 자세하게 오가고 있다.
삐삐 사업은 한때 전국 규모 기업체 외에 지역별 업체까지 생겨 활동했을 정도였으나, 지금은 단 한개 회사로 통합돼 관련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SK텔레콤에서 무선호출 부분(012)을 인수받은 '리얼 텔레콤'이 그것. 이 업체 가입자는 대구.경북 1만2천여명 등 전국에 12만명이 있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리얼 텔레콤 한준식(32) 경영지원팀장은 "가입자가 인수 때의 3분의 1 정도로 줄었다가 최근 다시 조금씩 느는 중"이라며, "증권정보 제공망이 새로 가동됐고 다음달부터는 자동차 네비게이션 서비스도 제공되기 시작하는 등 무선호출 서비스가 다각화되고 있기도 해 가입자는 더 늘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복고풍을 반영하듯 요즘은 삐삐 단말기 구하기도 하늘의 별따기. 서울의 한 삐삐 대리점에 근무하는 정인철씨는 "한달에 7, 8명이 신규로 가입하고 있으나 단말기 공급량이 부족해 순번을 예약해야 하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윤조기자 cgdream@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