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세이-누가 우릴 기다리고 있는가

입력 2003-09-06 10:45:49
로봇
mWiz 이 기사 포인트

바람의 감촉과 냄새가 쓸쓸하고 서늘한 것이 가을, 9월의 시작이다.

유난히 팍팍하고 힘들다는 올해, 그래도 지친 삶 한구석에 우릴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건 얼마나 든든하고 신나는 일인가. 세상일에 지치고 시린 마음 따뜻이 반겨줄 가족이 기다리는 곳, 고향. 이제 며칠 후면 추석 연휴의 시작이다.

3천만명 이상이 고향을 찾는다는 추석 도대체 무엇이 우릴 이렇게 움직이게 하는 걸까. 핏줄이 당기는 일이라서? 아님 우리 탯줄이 묻힌 곳이라서일까?

타향살이 객지에서 팽팽한 긴장과 어려운 여건속에서 너남할 것 없이 경쟁에 뒤처지지 않으려고 아득바득 견디다 이때쯤이면 고봉밥 해놓고 기다리는 부모님과 조상 곁으로 신들린 듯 떠나는 3천만의 대장정. 온 나라의 도로를 주차장으로 만들어 버리고 가다서다 7시간, 9시간을 마다하지 않는 그 초인적인 인내심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 곳엔 우리 생애의 가장 아름다운 일부분이 남아 있기 때문에 어린 날 내겐 추석이 둥글다는 이미지로 존재하고 있다.

고봉밥이 그랬고 빵빵하게 포식한 동생의 배가 그랬고 고모와 할머니가 만든 송편이 그랬고 빨갛게 익은 햇 대추와 밤이 그랬고 사과, 배, 감이 둥글었다.

초가지붕에 하얗게 핀 박꽃과 박 역시 둥글었다.

마당에 매인 황소의 그렁그렁한 맑은 눈이 둥글었고 멀리서 온 손자 손녀에게 객지에선 배 고프면 눈물난다 든든히 속 채워라 하시던 넉넉한 할머니의 마음 또한 둥글었다.

그리고 밤하늘 떠오른 보름달도 둥글고 이쁜 고모의 얼굴 같던 한없이 풍성한 그 보름달, 그 풍요로운 전경이 온 세상을 둥글고 아름답게 만들었다.

아마도 이맘때쯤이었을 거야.

어린 날 바닷가에서 친구들과 정신없이 놀다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집에서 찾으러 온 아이들 하나둘 돌아가고 혼자 남았을 때. 갑자기 왈칵 무섭고 적막하고 날은 점점 어두워오고, 파도소리 더욱 거칠고 육이오(6.25)전쟁 때 침몰한 군함에서 귀신들이 한꺼번에 몰려 올 것 같은 공포감, 두려움, 그 때 멀리서 엄마가 행주치마에 물 묻은 손을 닦으며 나를 부를 때의 기쁨과 눈물겨움, 안도감, 잊지 않고 챙겨주는 가족의 배려와 따뜻함.

혼자가 아니라는 안심과 서러움이 겹쳐 울어버린 기억이 있다.

그 공포와 무서움을 일시에 해결해준 엄마의 존재, 그런 것이 바로 고향이 아닐까. 객지에서 상처받고 외로운 자식들을 불러 들이는 어머니의 거대한 부름의 행렬인 한가위.

이번 추석엔 뿌리 끝에 대롱대롱 달린 볍씨 같은, 속은 다 내주고 껍질만 남은 부모님 곁에서 너무나 때묻고 더러워진 마음도 정화시키고 싶다.

내 자식에겐 할아버지가 농사지은 논에서 조손(祖孫)이 함께 피도 뽑아 보게 하고 난 나무 등걸 같은 손을 잡고 가만히 오랜 만에, 참으로 오랜 만에 엄마를 꼭 껴안아 보고 싶다.

그리고 엄마가 있어 너무 든든하고 힘이 된다고 말해야겠다.

앞으론 이제 우리가 고향이 되어야겠지. 내 자식에게, 또 그 자식에게 돌아가 쉴 곳을 만들어 주는, 돌아갈 곳이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고 했던가. 이렇게 이어지는 풍습 그게 한가위의 둥글고 아름다운 전통이 아닐까.

해질녘 저녁 먹으라고 불러들이는 엄마가 되어 언제라도 두렵고 외로울 때 따뜻이 힘이 되어주고 쉬게 해주는 고향, 그 고향을 만드는 일이 이제 우리 몫이리라. 갈수록 가족이 해체되고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출산율이 낮아지는 나라, 가정이 붕괴되고 이혼율이 높아지고 신용불량자가 늘어나는 지금에 그래도 고향에 뿌리를 두고 부름에 응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리라.

북녘에 고향을 두고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사람, 가족의 해체로 보호기관에 수용된 어린이와 버림받은 노인들이 더욱 외롭고 상처받는 추석이 아니었으면…. 다함께 풍성한 한가위가 될 수 있는 따뜻한 배려와 관심이 어느 때보다 더 필요할 때인 것 같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처럼.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