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修能 석차 비공개' 고집 버려야

입력 2003-09-03 13:41:00

대학 수학능력시험의 '개인별 석차를 공개해야 한다'는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은 수험생.학부모 등 교육 수요자의 불편과 불이익, 입시 혼란 등을 감안하면 당연하고 옳은 판단이다.

사실 그동안 이 같은 지적과 여론은 거의 지배적이었다.

현재의 총점 기준 석차 비공개 제도는 성적 위주의 '한 줄 세우기' 입시를 지양하고 대학 '서열화'를 막는다는 게 명분이었다.

하지만 그 효과가 전혀 나타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되레 혼란만 가중시켰다.

수험생들은 자신의 위치를 알 수 없어 자기 수준에 맞는 대학을 선택하는데 애를 먹었으며, 정확성이 떨어지는 사설 평가기관이나 입시기관의 총점 석차 관련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해의 경우 전국 각 고교는 수험생들의 수능 성적을 취합, 입시학원에 총점 자료를 넘기고, 학원에서는 이를 토대로 전국 규모의 성적분포 자료를 만들어 고교에 제공해 입시 상담을 하는 우스꽝스런 일들이 벌어졌다.

이 때문에 오히려 시간과 비용을 허비하는 '눈 가리고 아웅'식의 난센스가 빚어지기도 했다.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번 판결에도 불구하고 이를 수능 제도에 반영하지 않을 방침이며, 고등법원에 항소할 움직임이라니 이해하기 어렵다.

교육부의 이 같은 고집은 공급자 중심의 행정논리로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교육 수요자 피해는 물론 입시 혼란을 방치하겠다는 소리인지 모르겠다.

더구나 이번 판결 내용으로 볼 때, 소송을 제기한 사람들에게만 2003학년도 석차를 공개하면 되고, 대법원의 확정 판결까지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올해 치러질 2004학년도 수능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수능 총점 기준 석차가 공개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교육부는 이번 판결에 대해 '석차가 공개될 경우 총점 중심의 입시와 대학 서열화가 재발 할 것'이라며, '이는 학생 개개인의 특기.적성 계발을 저해하고 대학 입학 전형을 획일화해 다양화.특성화 요구에 부합하지 못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따라서 지금 상황으로는 석차 공개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교육부는 이제 '정보의 비공개로 인해 보호되는 공공의 이익은 그리 크지 않은 반면 부정확한 정보로 인해 혼란을 겪는 수험생의 불이익은 상당하다'는 법원의 판결 앞에 고집을 버리고 당장 올해 수능부터 개인별 석차 공개를 하는 게 바람직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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