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일'과 '레저'의 경계

입력 2003-09-01 11:40:44

여가는 경제후생을 증대시키는 효과는 있지만 국민소득 증대와는 무관하다.

등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3시간을 등산하는 것과 3시간 일을하고 2만원을 버는 효용이 같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이 등산을 할 경우 2만원 상당의 효용을 얻는데도 불구하고 국민소득에는 반영되지 않는다.

그러나 일을 해서 2만원을 번다면 이는 국민소득에 포함된다.

우리가 흔히 나라 경제 규모의 척도로 생각하고 있는 국내총생산(GDP)개념의 허점이자 한계다.

이처럼 주 5일 근무제는 '일'과 '휴식'의 경계를 새삼 되새기게 한다.

▲2001년 기준으로 한국인의 연간노동시간이 세계 1위인 것으로 조사됐다고 국제노동기구(ILO) 보고서가 최근 밝혔다.

한국인의 연간 노동시간은 2천447시간으로, 미국보다는 26%, 세계에서 노동시간이 가장 짧은 네덜란드보다는 46%나 긴 것으로 조사됐다.

이 보고서는 "기술과 자본의 부족을 노동으로 매우려는 개도권 경제의 전형적인 특성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나 주 5일제 근무가 확산된 올해를 기준으로 다시 평가한다면 엄청난 변화가 있을 것이다.

▲이제 '일벌레'라는 말은 더 이상 극찬이 아니다.

우리 경제가 IT(정보통신)쪽으로 급선회하면서 단순한 육체 노동은 크게 의미가 없어졌다.

일하는 시간보다는 부가가치에 초점이 모아졌기 때문이다.

따라서 '일벌레'는 낙후된 아날로그 시대의 인물로 폄훼되거나 정보나 생산성이 낮은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닉네임이 돼버렸다.

그러나 기성세대들은 여전히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산업구조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열악한 현시점에서 선진국형 레저 시대를 열고있으니 정부가 '노는 분위기'를 부추기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그러나 지방 발전을 위해 내년부터 도입키로 한 지역특화발전특구에 골프·스키·수상레포츠 등 관광레저 분야 신청이 쇄도한 것으로 보면 장강(長江)의 물줄기를 막을 수는 없는 모양이다.

재경부에 따르면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 116개 자치단체가 신청했거나 계획중인 지역특화발전특구는 모두 350여개로, 이 가운데 50% 이상이 주5일 근무제를 겨냥한 관광레저분야인 것으로 파악됐다.

▲관광자원 개발도 중요하지만 하루를 일하지 않으면(不作) 하루를 먹지 않는다(不食)는 전통적인 근로관에 젖은 사람들은 이같은 변화를 쉬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은 노는 시간이 아니다.

어떻게 노느냐다.

레저에도 '품위'가 있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복지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길이다.

윤주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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