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은 문학을 하는 분이라구요?" "아이고, 전공 이야기는 하지 맙시다" "왜, 하면 안되나요?" "전공 이야기를 하면 너무 복잡해지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죠". 북한 응원단의 한 단원과 필자의 대화이다.
이런 이건 오히려 내가 인터뷰를 당하는 꼴이 되어버렸군. 생각할 틈도 없이 다음 말이 날아온다.
"문학은 인간학입네다.
인간학은 모든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 아닙네까? 그러니 모든 분야 모든 전공에 해당되는 것이라요". 영화문학(시나리오)을 전공한다는 장혜련씨의 말. 인터뷰 당하는 것도 넘어서 아예 강의를 듣고 말았다.
필자가 받아적는 흉내를 내면서 교수와 학생이 바뀌었다는 농담을 던지자 수송버스 안에는 한바탕 웃음이 터진다.
이미 북한 미녀들에게 필자가 대학에서 문학을 강의하는 강사라는 사실을 밝히고 인사를 나눈 후였기 때문이다.
그렇다.
문학은 인간을 이해하기 위한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렇게 북한응원단과 동행하는 것이 바로 이해를 위해서가 아닌가. 그래서 그들에게 소개할 때에도 "여러분을 이해하고 싶어서 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무엇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혹은 무엇을 오해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무 것도 모른 채 그냥 동행을 시작했다.
동행 중에 분명히 무엇인가를 알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가진 채. 28일 아침 북한응원단 숙소인 대구은행 연수원의 공기는 냉랭했다.
경비는 삼엄했고, 안내를 맡은 요원들도 낯선 사람에게 경계의 눈빛을 보냈다.
몇 단계의 신분 확인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일말이나마 기대했던 약간의 특별 대우는커녕 제대로 따라다닐수 있을지 의구심마저 들었다.
응원단과 함께 버스를 배정받고 올라타자 잠시 뒤 일제히 노래를 시작했다.
'청년절'을 축하하기 위한 노래. 마침 28일이 북측의 청년절이었다.
'성년의 날'과는 조금 성격이 달랐다.
그들과 친해지기 위해 박수를 따라 손뼉을 쳤다.
노래를 몰라 따라 부를 수 없었지만 성의는 전달됐다.
박수치는 법을 눈빛으로 알려주기도 했고 가끔은 띄엄띄엄 가사를 불러주기도 했다.
꽉 짜여진 일정 때문에 점심은 버스 속에서 도시락으로 때워야 했다.
이것 역시 그들과 친해질 기회라고 생각했고, 도시락 배급에 발벗고 나섰다.
가끔 던지는 실없는 농담과 함께 건네는 도시락을 받으면서 때로는 환한 미소로, 때로는 나지막한 실소로 응대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피식거리는 한 단원을 보고 사람이 우스워 보이느냐고 물었다.
우스워서 그런 게 아니고 자신이 다니는 대학교에 닮은 교수가 있어 곁눈질로 보고 웃은 것이란다.
워낙 평범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우리 민족이면 닮은 사람이 많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게 말문을 터가며 친해지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머리를 양 갈래로 곱게 땋은 응원단원이 눈에 띄었다.
"머리가 참 긴 모양이네요" "보기 싫습네까?" "아니, 예쁘다는 말이죠. 아름다운 얼굴에 긴 생머리는 모든 남자들이 다 바라는 이상적 모습 아닙니까?" 사실 '남이든 북이든'이라는 말을 끼워 넣으려다 너무 의식적인 것 같아서 빼 버렸다.
김련희라는 이름을 가진 그 응원단원은 밝게 웃었다.
"전공이 뭡니까?" 말이 시작된 김에 이어서 물었다.
"뭘 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문한다.
"키가 훤칠하니까, 서양무용을 하지 않나요?" 현대무용을 북에서는 뭐라고 부르는지 몰라서 생각나는 대로 '서양무용'이라고 했다.
그 말이 맞는지 틀리는지 상관없이 피식 한번 웃고는 첼로를 한다고 했다.
필자가 짐짓 놀라며 애인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 물음에 잠시 고개를 돌려 웃더니 왜 묻느냐고 한다.
"아름다운 얼굴에, 긴 생머리에, 훤칠한 키에, 첼로 같은 멋진 예술을 하는 여자라면 모든 남자의 선망의 대상일 텐데. 애인이 있는 게 문제구만. 그것만 아니면 남자들이 줄줄 따라 다닐텐데" 농담이 주효했는지 주위에 있던 응원단원들이 모두 웃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필자에게 결혼은 했느냐, 아이들은 있느냐, 아들이야 딸이냐, 몇 살이야 등등을 물어오기 시작했다.
아이들 사진을 꺼내 주위의 응원단원과 돌려보며 이야기를 나눴다.
그러던 중 예천으로 양궁 경기 응원을 갔던 일행이 도착하여 대구시민운동장 입장을 시작했다.
나중에 들어보니 그 일행이 축구장으로 합류하러 오는 도중에 약간의 사건이 있었더란다.
아마도 이번 대회 기간 북한 응원단이 뿌리는 숱한 화제 중의 하나가 될 만한 사건이었다.
필자에게도 이번 동행의 목적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과연 나는 무엇을 이해한다고 했던 것인가, 가슴으로만 혹은 느낌으로만 이해한다고 이해될까, 오히려 서로 다름을 제대로 인식하는 것이 제대로 이해하는 초석이 되는 것이 아닐까.
여자축구 경기 하프타임을 이용해 한반도기가 올라왔다.
아마 지난 일요일의 감동을 재현하고 싶었으리라. 한반도기는 북한 응원단의 맞은 편 관중석에 빨간 티셔츠를 차려입은 아리랑 응원단에서 시작해 왼쪽으로, 왼쪽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북한 응원단을 보호하는 철책에 걸려 더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관중들은 "받아라, 받아라" 혹은 "넘겨라, 넘겨라"를 외쳤으나, 끝내 한반도기는 옮겨지지 못했다.
필자도 간간히 박수를 치며 한반도기가 옮겨오기를 기다리는 북한 응원단을 지켜봤다.
받기 싫어 안 받은 것이 아니었다.
철책과 응원단의 거리가 너무 멀었다.
응원단도 자리를 지켜야 했기에 자리를 뜨지 못했다.
그렇구나, 아직은 아직 멀구나, 그리고 그 먼 거리를 채우기에 아직 부족하구나.
감동 재현의 좌절을 뒤로 한 채 응원은 계속되었다.
전반전부터 점수 차이를 크게 벌여놓은 마당이기에 더 이상 승부는 관심거리가 되지 못했다.
보도진은 온통 북한 응원단의 관중석 밑에 진을 치고 있었고, 마치 경기가 아니라 공연을 중계하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아리랑 응원단 및 북한 서포터스로 보이는 응원단과 함께 통일 응원을 주고 받으며 축제의 장을 열어가고 있었다.
북한 응원단은 단순한 볼거리가 아니다.
그들은 하나가 되기 위한 초석을 놓는 전령사이며 선발대이다.
그들이 아름다운 것은 자극적인 노출이나 관능적인 도발 때문이 아니다.
그들의 외모는 단아하고 그들의 행동은 명랑하다.
어찌 보면 단순하거나 상투적이라고 할 수도 있는 몸짓이지만 질서와 책임에 의하여 화려하고 우아한 광경을 연출한다.
그들에게 기대하는 것은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이다.
그들이 아름다운 이유는 거기에 있다.
축구 응원을 마치고 수송버스는 숙소인 연수원으로 향했다.
이제 응원단원과 제대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문학 운운하던 장혜련 선생(남측 사람과 북측 사람이 서로를 부를 때는 지위고하에 상관없이 이렇게 '선생'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상화된 모양이었다)과의 대화도 그때 나눈 것이었다.
고부갈등을 비롯한 가족 문제나 쌍꺼풀 수술을 위시하여 머리 염색의 문제, 남성들의 귀걸이 등 미용 세태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생활의 부분부터 같은 것과 다른 것을 확인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무조건적인 통합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무엇이 다른지 알아내는 것이 우선이다.
하지만 공식적인 일정이 끝났으니 좀더 깊은 대화를 나눌 시간을 가질 수 있으리라던 기대는 무너졌다.
연수원의 냉랭한 공기는 여전했다.
저녁식사를 같은 식당에서 마주보며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은 소박한 꿈에 불과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 응원단원은 줄을 맞춰 총총 사라졌다.
게다가 오전에 행운이라고 믿었던 청년절이 불행으로 바뀌어 버렸다.
청년절 행사를 자체적으로 치르기 위해 북측 사람들 외에는 모두 배제했다.
그것은 그들만의 시간이었고 그들에게만 허락한 공간이었다.
아직도 이해를 못하는 게 많았구나. 제대로 이해를 하기에는 너무 멀었구나. 그래도 포기할 수는 없다.
조금이라도 더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을 그칠 수는 없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내일을 기약했다.
〈문학평론가〉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기현 "'문재인의 남자' 탁현민, 국회직 임명 철회해야"
대통령실 "국민추천제, 7만4천건 접수"…장·차관 추천 오늘 마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