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촌 '퇴촌생떼' 혼쭐

입력 2003-08-29 10:20:53

귀국길에 오르는 외국 선수들이 갈수록 증가해 28일까지 이미 555명의 임원·선수들이 선수촌을 떠났다.

선수단 전체가 퇴촌한 경우는 25일 괌(1명)과 인도(2명), 26일 사우디아라비아(1명) 버진군도(1명) 에리트리아(3명), 27일 세이셀(2명), 28일 그레나다(2명) 등. 하지만 같은 국가 선수단이라도 종목에 따라 먼저 경기가 끝난 선수들부터 짐을 싸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도 갖가지 일들이 벌어져 얘깃거리가 되고 있다.

▨한방중 달러 급구 소동

선수촌 관계자들은 그레나다 선수들에 의해 혼줄이 났다고 했다.

갑작스레 퇴촌하겠다며 맡겨 놨던 예치금을 내 놓으라고 한밤중에 다그친 것.

선수들이 서비스센터를 찾은 것은 지난 27일 밤 10시쯤. 28일 새벽에 퇴촌하겠다며 입촌 때 맡겨 놓은 예치금 100달러를 돌려달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선수촌 은행이 밤 9시면 문을 닫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달러를 구하기 불가능한 형편이었다.

상황을 설명하고 양해를 구했지만 막무가내.

하는 수 없이 "내일 새벽까지는 꼭 돌려주겠다"고 달래 보낸 후 관계자들은 100달러 구하기 전쟁을 벌여야 했다.

선수촌 각 사무실마다 전화를 걸어 달러 가진 직원이 있는지 수소문했지만 헛수고. 한밤중이 돼서야 100달러를 가진 한 통역봉사자를 찾아낼 수 있었다.

선수들은 28일 돈을 챙기곤 새벽 6시30분쯤 택시를 타고 대구공항으로 떠났다

관계자는 "각 선수단에 퇴촌 48시간 전에 퇴촌신청을 해 달라고 홍보해도 유념치 않다가 자기네들 사정따라 뒤늦게 찾아 와서는 생떼를 쓴다"고 했다.

▨예치금도 못 내

퇴촌 선수가 증가하면서 선수촌 관계자들은 각 선수단 숙소 내 시설물 손망실 상황 파악에 나섰다.

그걸 찾아내야 그들이 퇴촌할 때 수리·보수비를 떼고 예치금을 정산해 내 줄 수 있기 때문. 지금까지는 일본이 창문 1개(5만원), 세네갈이 거실 전등 커버(4만5천원), 우루과이가 창문 2개(4만원), 미국이 군용 포단 2개(4만원), 헝가리가 화장실 전등 커버(1만2천원) 등을 손상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이런 용도에 쓰기 위해 맡겨 놓도록 하는 예치금조차 납부하지 않은 배짱형 선수단도 10여개에 달한다고 관계자가 전했다.

때문에 해당 선수단 숙소에서 손망실이 발견될 경우엔 보상비를 대회조직위에서 떠맡아야 할 상황이라는 것. 그런 선수단은 대체로 체제비까지 보조 받는 국가 소속. 체제비는 보조해 주더라도 예치금은 자부담해야 하지만 대회조직위는 도시 이미지를 감안해 "시설물을 파손하지 않겠다"는 각서만 받고 입촌을 허락했다고 전했다.

예치금은 선수단이 25명 이하일때는 100달러, 그 이상은 500달러이다.

이 부분에서 특이한 점은, 이런 선수단일수록 퇴촌일을 가장 늦추고 있는 사실. 관계자는 "모든 것이 공짜라서 여유를 갖는 것 같다"고 했다.

▨하룻밤 더 재워 주세요

인도 선수들은 퇴촌 과정에서 두번 다시 찾아 볼 수 없는 진기록을 세웠다.

태권도 선수로 왔던 2명이 모두 경기에는 참가해 보지도 못한 채 퇴촌했을 뿐 아니라, 귀국길에서 문제가 생겨 다시 대구로 되돌아 왔으나 잘 곳을 못구해 어려움을 겪은 것. 이들의 선수촌 생활 기간도 단 몇 시간에 불과했다는 최단기로 기록됐다.

이들 2명은 지난 22일 대구에 도착하고도 선수촌에 들어가지 않고 여관에 머물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루 37달러를 내야 하는 선수촌보다 여관이 싸다는 것. 이들은 25일 오전에야 입촌했다.

하지만 첫 식사로 점심을 먹자마자 그 중 쿠말 산지브 선수의 할머니가 숨졌다는 소식이 갑자기 전해졌고, 산지브 선수는 곧바로 퇴촌했다.

그는 그 다음날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으나 포기했다

더 이상 남아 있을 이유가 없던 싱흐 하디브 선수도 함께 가겠다며 길을 나섰다.

그는 자신의 첫 경기 일정이 끝난 직후에야 대구에 도착, 경기에는 참가해 보지도 못했었다.

하지만 일은 또 꼬였다.

사건은 두 선수가 인천공항으로 가기 위해 고속버스를 타고 옥천휴게소에 도착했을 때 벌어졌다.

산지브 선수는 내리지 않은 채 고속버스에서 잠을 자고 있었으나 잠시 화장실을 다녀온 하디브는 자신이 타고 온 고속버스를 찾을 수 없었다.

동료와 헤어지고 만 것.

하디브는 할 수 없이 택시를 불러 대구의 선수촌으로 되돌아왔다.

하지만 그에겐 택시 요금조차 없었다.

이들이 퇴촌 때 되찾아 갔던 예치금 등 174달러는 전부 산지브 선수가 갖고 있었던 것. 그 때문에 요금을 못낸 하디브는 선수촌 관계자의 도움을 받고서야 택시에서나마 내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낮에 잠시 머물렀던 숙소에 들어가는 것이 불가능했다.

이미 퇴촌 절차가 끝나버렸기 때문.

하디브는 결국 선수촌 대기실에서 밤을 지내야 했고, 산지브가 인천까지 갔다가 되돌아 와서야 다시 함께 귀국길에 오를 수 있었다.

그 사이 하루가 벌써 지나가 버렸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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