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머드급 태풍은 방향을 예측하기 어렵다.
내부 폭발력이 너무 강해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태풍 진로에 대해서는 가능한 '경우의 수'를 많이 만들어놓고 이에 대비하는 것이 피해를 줄이는 길이다.
지금 우리나라는 가히 이런 태풍의 중심권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97년 외환위기 이후 '세계화' 이데올로기가 우리의 안방을 단숨에 점령해 버리더니 숨돌릴 틈도 없이 정보화사회, 지식기반사회라는 화두(話頭)가 춤을 추고 있다.
외풍에 뒤질세라 우리 내부에도 숨가쁜 변화의 바람이 일고 있다.
남북한 관계에 지각 변동이 일어나고 노사(勞使) 함수관계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로드맵'을 만들어내고 있다.
급기야 '보수와 진보'라는 날카로운 이념대립이 가공할 사회갈등 요인으로 부풀고 있으니 과연 유사이래 대내외적으로 이렇게 거대한 돌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적이 있었던가.
갈등은 발전과 진화의 샘물이다.
창조적 파괴의 원천이기도 하다.
그러나 갈등 속에도 반드시 지켜져야할 법도가 있다.
'법과 원칙'이 그것이다.
법과 원칙이 없으면 갈등은 곧 파괴를 의미한다.
게다가 태풍의 내부 힘이 강할수록 법과 원칙이 무시되는 경향이 있다.
새로 부각된 이념적 지표에 눈이 어두워 법과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보지못하기 때문이다.
프랑스 대혁명이 자유와 평등의 열매를 바로 맺지 못하고 '공포정치'라는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것은 내부 에너지가 너무 강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매머드급 태풍은 방향을 예측하기 곤란하다.
지금 국민들이 불안해하는 것도 우리가 태풍의 중심부에 서 있다는 사실 때문이 아니다.
이미 관성이 붙어버린 힘의 속도가 너무 강해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렵다는 '불확실성'때문이 아닐까.
지금 참여정부는 '법과 원칙'을 새삼 강조하고 있다.
출범 초기 4대 국정원리에 분명 '원칙과 신뢰'가 들어가 있는데도 이를 재조명하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무법과 무원칙'을 부르짖는 정권은 세상 어디에도 없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 왜 강조되는가. 법과 원칙이 지켜지지않기 때문이다.
법과 윈칙은 부르짖는 것이 아니다.
지켜져야하는 것이다.
이제 노 대통령은 '살롱'을 하나 만드십시오. 시중에 흔히 있는 천박한 문화 공간인 살롱이 아니라 17~18세기 프랑스에 유행했던 그런 '살롱'말입니다.
제도권 내로 흡수되지않은 진보적 지식인의 모임인 고급 살롱은 학문과 예술, 정치 토론의 주요 무대가 아니었습니까. 프랑스 대혁명의 밑거름인 계몽사상도 이들 살롱을 통해 전파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은 아니지요.
그런데 왜 대통령은 마음 맞는 사람만 있으면 죄다 가까이에 두려고 합니까. 아니 가까이에 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오히려 진정한 친구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진정 당신의 철학과 코드를 이해한다면 지척에서 보필하는 것보다 고급 살롱에서 유유자적하며 당신의 생각을 간접적으로 홍보해주는 살롱맨이 더 절실한 것 아닌가요. 권위주의가 속성인 권력 속에 있으면서 '낮은 데로 임하라'는 당신의 철학을 그들이 얼마나 실천할지는 의문입니다.
'법과 원칙'은 이렇게 제도권 밖에서부터 지켜져야 합니다.
독일 철학자 헤겔은 1820년 '법철학' 서문을 쓰면서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이 깃들 무렵에야 비로소 날기 시작한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미네르바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지혜의 여신으로 희랍신화에서는 아테나 여신에 해당합니다.
부엉이는 바로 철학과 지혜의 상징이지요. 대낮에는 세상을 볼 수 없는 주맹증(晝盲症)에 걸린 새가 왜 지혜를 상징합니까. 지혜는 자만하지 않습니다.
온갖 힘과 권위가 설치는 대낮에는 지혜를 발견하기 힘듭니다.
그러니까 세상사의 복잡한 변동이 가라앉은 바로 어스럼한 시점이 돼야 비로소 세계를 냉정히 바라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엉이는 비록 황혼이 질 무렵에야 날기 시작하지만 그 비상(飛翔)은 어둠의 저편 다시 동터오는 새벽을 예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노 대통령, 당신의 주변에 있는 부엉이들이 마음껏 날 수 있도록 어둠을 주십시오. 빛에 노출돼 존재를 뚜렷이 부각시키는 사람보다 어둠속에서 찬란한 새벽을 만들어가는 그런 사람들이 진정 당신과 '코드'가 맞는 사람이 아닐까요. 그리고 정기적으로 '살롱'에 들러 그들과 담론을 나누십시오. 부엉이가 날아다니는 황혼녘에 말입니다.
윤주태(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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