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옥입니다-호박꽃

입력 2003-08-26 08:23:48

대구하계U대회 북한응원단에 대한 관심이 늦여름의 폭염 이상으로 뜨겁다.

선수보다도 그들이 더 이목을 끄는 이유는 단 하나, 얼굴이 예쁘기 때문. 신문과 방송에는 '미녀응원단'이란 용어가 범람하고, '자연산 미인'이니 '자연산 미소', '역시 남남북녀' 등 극찬이 끊이지 않는다.

"응원단의 용모에만 지나치게 관심두는 것 같다"고 하면 남성들은 "용모 외에 관심둘게 달리 뭐 있느냐"고 말한다.

"북한 전역에서 뽑혔으니 미인일 수 밖에"라고 대응하면 "질투하지?"라고 한다.

(이쯤되면 '질투의 화신' 소릴 듣지 않기 위해서라도 입을 다무는 것이 상책)

북녀(北女)들의 모습에 반쯤 넋나간 듯한 남쪽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북쪽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지 궁금해진다.

부산 아시안게임때보다도 미모가 업그레이드 됐다는 북녀들을 보며 엉뚱하게도 호박꽃이 보고싶어짐은 왜일까.

화려한 여름꽃들이 짧은 일생을 살다가는 가운데 담장 아래 한 귀퉁이, 또는 거친 밭둑에서 눈길 주는 이 없어도 저혼자 여름 내내 피고지는 호박꽃. '호박꽃도 꽃이더냐', '꽃은 꽃이지만 호박꽃'이라고 사람들은 비아냥거리지만 우리의 편견과는 달리 호박꽃은 못생긴 꽃이 아니다.

부드러운 노랑빛의 큼직한 꽃송이는 후덕한 맏며느리처럼 어질어보인다

버려진 땅, 우거진 잡풀 속에 제멋대로 버려두어도 어느 새 반질반질 윤기나는 호박들을 주렁주렁 매달고 있다.

결코 환경을 탓하지 않는 그 모습은 순박한 심성의 또순이 같고, 무성한 호박잎 사이 점점이 노란 왕별처럼 돋아나는 그 모습엔 고상한 품위마저 어려있다.

옛시절의 아이들은 호박꽃 속에 반딧불이를 넣어 오므린 근사한 호박꽃초롱을 들고 놀았다.

또 엄마들은 어린 호박꽃에 밀가루나 쌀가루옷을 입혀 살짝 쪄서 양념장에 찍어먹는 호박꽃찜이나 쿵쿵 찧은 애호박과 호박꽃순, 손바닥으로 치댄 호박잎으로 얼큰하게 끓인 호박잎국 같은 고향의 맛을 만들어 냈다.

조마조마 우려했던대로 남-북간에 또 충돌이 일어났다.

남북간의 깊고도 깊은 골을 또한번 절감케 된다.

호박꽃의 꽃말은 '해독(解毒)'. 오랜 반목과 증오의 독이 저 너울거리는 호박잎 사이 넉넉한 품새의 호박꽃처럼 이번 대구U대회를 통해 조금씩 엷어질 수 있다면, 그래서 진정으로 '하나되는 꿈'이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편집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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