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았던 고향마을에는 한 오백년쯤 묵은 느티나무가 동네 어귀에 버티고 서 있었다.
한아름이나 되는 굵은 뿌리가 개울 위에 다리처럼 걸쳐져 있었다.
나무에 그네를 매어놓고 그네를 타던 사람들. 다람쥐처럼 나무에 재빠르게 오르던 아이들. 모내기철이면 그 커다란 그늘 아래 사람들이 모여 앉아 새참을 먹고 낮잠을 자기도 했다.
나뭇가지가 휘어질 만큼 풍성하게 열리던 매미소리. 느티나무의 그늘은 온 동네 사람들을 다 품어줄 만큼 넉넉했다.
몇 년만에 고향에 들르니 그 나무가 베어지고 없었다.
그 느티나무는 마을의 슬픔과 기쁨을 나이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살아 있는 역사였다.
느티나무 껍질의 까칠한 감촉, 바람에 물결처럼 술렁대던 수천 수만 장의 푸른 잎사귀들. 푸른 그늘의 서늘한 느낌이 가슴이 아리도록 생생하다.
베어진 그 나무가 그리워 나는 마음에 느티나무를 심어 놓고 가끔씩 그늘 아래서 쉬곤 한다.
사람마다 마음 속에는 추억의 나무 한 그루씩 자란다.
나무 한 그루 한 그루가 모여 숲을 만든다.
숲은 물을 저장해 홍수를 막아주는 천연의 녹색댐이다.
아파트 숲이 늘어갈수록 숲은 점점 줄어든다.
나무를 베어내는 사람도 있지만 심고 가꾸는 사람도 있다.
장 지오노의 단편 '나무를 심는 사람'에는 주인공 양치기 노인이 홀로 수 십 년 동안 민둥산에 나무를 심는다.
그가 죽을 무렵 민둥산은 울창한 숲으로 뒤덮인다.
그 양치기 노인처럼 나무를 심고 가꾸는 사람이 있으므로 우리의 숲은 아직도 울창하다.
내 뒤에 올 누군가를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미루나무 아래서 하늘을 올려다본다.
잎사귀들이 푸른 영혼을 뒤척인다.
바람이 불자 나무 속에서 파도소리가 들린다.
수천 수 만 마리의 물고기처럼 푸른 지느러미를 흔드는 잎사귀들에 눈이 부신다.
세상의 모든 나무는 아름답다.
김옥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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