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르트르는 세계대전시 레지스탕스 운동을 했고 전쟁 포로 생활까지 겪은 행동하는 지식인이다.
정의감 넘치는 청년이기 십상인 20대 무렵 나는 경력만 보고도 싸르트르에게 최대의 경의를 표했고, 그의 글들을 열성을 다해 탐독했다.
하지만 너무나 무지한 탓으로 그의 글들 속에 보석처럼 박혀 있는 진리를 제대로 체감하지는 못했다.
물론 세월이 20년이나 흐른 지금도 나는 그의 글들을 읽을 때면 여전히 문맹 수준에 불과하지만....
싸르트르의 작품에 '파리 떼 Les Mouches'라는 것이 있다.
싸르트르는 이 작품을 통해 세 가지 통찰을 보여준다.
첫째, 내면의 자유란 허식에 불과하며 그것은 언제나 이론적이고 정신적일 뿐이다.
인간은 자신이 세계를 자유롭게 할 수 있을 때에만 진정으로 자유롭다.
둘째, 자유란 오직 행위 속에만 있다.
셋째, 그 행위의 목적은 인간의 근원적 본질과 일치하는 것이다.
인간은 자유 그 자체이다.
... 즉, 이 작품은 독일의 점령에 굴종하고 있는 프랑스인들, 특히 지식인들에 대한 고발을 1차적 목표로 하고 있으며, 일반적 측면에서 본다면 인간과 인간의 자유 그리고 지배 권력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파리 떼'를 읽은 후, 발행일이 1971년 3월1일로 찍혀 있는 싸르트르의 '지식인을 위한 변명'을 독파하게 되었다.
물론 번역판이다.
프랑스어를 전혀 모르니 번역판을 읽은 것은 너무나 당연했다.
지식인이 처해 있는 특수한 상황과 모순을 분석하고, 그 모순의 극복을 통해 지식인의 참다운 기능을 명쾌하게 밝혀주는 '지식인을 위한 변명'은 그 후 누렇게 변색되었지만 내게는 여전히 애지중지하는 소장품으로 남아 있다.
이유는 두 가지이다.
하나는, 군 복무를 마치고 복학 후 여름학기에 추가졸업을 했는데 5.18 등 당대 상황 탓으로 졸업식도 열리지 않아 아무도 축하해주는 이가 없는 상황에서 보기 드물게 선물로 받은 책이었다는 생애의 추억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제목이 말해주는 바와 같이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했던 젊은 날의 한때를 쉽게는 잊지 않도록 채찍질해주는 생애의 나침반과도 같은 책이기 때문이다.
지식전문가가 아니라 진정한 지식인이 되어야 한다는 생의 좌표를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정했으니 '지식인을 위한 변명'이야말로 내 인생의 책 한 권이 아니겠는가.
싸르트르는 자신의 연구 분야에서 보편적 법칙과 진리를 얻은 지식전문가가 그 진리를 사회와 인간 전체에 보편화하면 비로소 지식인이 된다고 했다.
그렇다면, 지식전문가도 아닌 주제에 지식인의 사회적 책무에 감히 복무하려는 나는 무엇인가. 분수도 모르는 나를 변명해줄 이는 과연 누구인가.
정만진(소설가.대구시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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