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중.고생 70명이 지난 13일부터 사흘 동안 부랑인 요양시설인 충북 음성 꽃동네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꽃동네는 일일 봉사활동을 하기 위해 찾는 사람이 연 60만명, 2박3일 동안 수련원에 머물면서 활동하는 사람만 연 3만명에 이르는 봉사활동의 대명사로 자리잡은 곳. 학생들이 어떤 활동을 하며 어떤 생각을 하는지 동행, 취재했다.
#장애인 이해하기
대구서 네시간 가까이 버스를 타고 가서 도착한 첫날 프로그램은 장애인과 눈높이를 맞추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표적인 게 장애 체험. 학생들은 두시간 넘게 안대를 착용하고 말도 못 한 채 답답함을 견뎌내야 했다.
"TV 가족오락관 같다"며 재미 삼아 시작한 학생들. 킥킥거리며 웃음을 참기도 하고, 안대 쓴 친구를 밀고 장난도 쳤다.
그러나 지팡이 하나에 의지해 징검다리를 건너거나, 온몸으로 다른 사람에게 의사표현을 하거나, 아예 전신마비 장애를 체험하며 점점 표정이 진지해졌다.
최원준(관음중3년)군은 "몇 번이나 안대를 벗어던지고 싶었는데 평생 보지 못하는 사람의 심정을 가져보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고 억지로 참았다"고 했다.
최군은 체험이 끝난 후 자신의 눈을 만져보며 "눈이 있어 세상을 볼 수 있음에 감사한다"고 했다.
이진섭(대구남중3년)군은 "눈과 입, 손과 발 어느 하나만 불편해도 답답해 미칠 것 같은데 전신마비나 복합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얼마나 불편할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됐다"고 했다.
장애 체험 후 가진 명상의 시간. 전신마비 장애인 배영희씨의 시 '나는 행복합니다'를 듣는 학생들의 눈가에는 눈물이 비쳤다.
#손과 발 되기
둘째날 아침 기상시간은 새벽 5시. 방학이라 늘어질대로 늘어진 몸이 일어날까 싶었는데 한 사람도 늑장이 없었다.
부랑인 요양시설 '희망의 집'과 노인요양원 '애덕의 집'을 중심으로 청소와 주방일, 주변 환경정리, 목욕시키기, 대소변 치우기, 말벗 되기 등 빡빡하고 힘든 일과가 기다리고 있었지만 그들의 눈은 빛나고 있었다.
한참 후, '애덕의 집'에서 할머니의 목욕을 시켜드리던 이한결(관음중3년)양을 만났다.
3시간째 10명의 할머니를 씻겨드렸다는 이양의 몸은 젖을대로 젖어있었다.
"내내 웅얼거리는 할머니들의 말씀을 감으로 알아듣고 구석구석 씻겨드렸는데 참 좋아하시더라"는 이양은 "이젠 내가 할머니들께 목욕시켜 달라고 해야 겠다"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희망의 집'에서는 고교생 몇 명이 중증 장애인들과 재미나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전신장애를 앓는 장애인의 손을 잡고 함께 그림을 그리거나, 이 색깔 저 색깔 골라주기도 하는 모습이 가족을 보는 듯 했다.
방준영(오성고1년)군은 "몸이 불편한데도 그림과 시를 좋아하며 순수한 마음을 간직한 아저씨를 보니 나까지 행복한 기분"이라며 "매일 짜증 내고 잘 웃지도 않던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됐다"고 했다.
김영재(경북공고2년)군은 "봉사활동 시간을 떼우기 위해 왔는데 막상 활동을 하다 보니 참된 봉사가 어떤 건지 깨닫게 됐다"고 했다.
#스스로 찾는 의미
2박3일 일정이었지만 실제로 봉사활동을 하는 시간은 열시간여.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었다.
행사를 주관한 대구자원봉사센터 이미향씨는 "크게 봐서 평소 봉사활동이 생활처럼 된 학생들과 학교 봉사활동 시간을 맞추려고 온 학생들로 나눠진다"며 "어떤 형태로든 각자에게 뜻있는 시간이 됐을 것"이라고 했다.
활동 후 설문조사 결과가 흥미로웠다.
"장애 체험과 봉사활동을 통해 건강한 자신이 행복한 존재라는 걸 다시 돌아보게 됐다"는 학생이 70명 가운데 27명. "파출소나 학교, 양로원 등에서 하던 봉사활동과 달리 몸에 와닿는 실질적인 체험이었다"며 활동에 무게를 둔 학생이 22명. 세번째로 많은 17명의 대답은 "캠프 온 기분으로 재미있게 지냈다"였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것이 좋았고, 프로그램도 즐겁게 받아들였다는 것이었다.
학교 의무 봉사활동 제도는 도입 초기 억지 확인증이다, 부모가 대신 하는 활동이다, 돈 주고 산다 해서 탈이 많았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사이 학생들에게 봉사활동은 자신을 돌아보고 행복과 즐거움, 자신만의 의미를 찾는 소중한 계기로 뿌리내리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정해진 시간을 맞추느라 마음에 없는 고생을 하는 학생들도 여전히 있겠지만, 이번 방학 꽃동네를 찾은 학생들에겐 삶에서 잊지 못할 땀방울 하나 남을 것 같아 보였다.
연수원장 이용진 신부는 "꽃동네에서의 체험을 통해 학생들이 느끼는 마음은 다 다르겠지만 자신과 가족, 이웃과 사회, 나아가 인류에 대한 사랑을 다시금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 됐길 바란다"고 했다.
권성훈기자 cdro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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