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삶과 죽음

입력 2003-08-19 15:13:01

지난주 필자는 가족들 모두가 예견해온 장인의 죽음과 그 장례를 치르는 와중에 갑작스러운 처남의 죽음이 겹쳐져 너무 힘이 들었고, 또한 많은 것을 생각하고 깨닫는 귀한 시간을 가졌다.

난생 처음 상주가 되어 망자의 빈소에 앉아 머리 속에 떠나지 않는 주제가 바로 죽음이었다.

같은 죽음이지만 마음의 준비를 하였던 일과 꿈에서조차 생각해보지 못한 일을 경험하였을 때의 차이는 엄청났다.

사건의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고 부정하려고만 했다.

왜 그랬을까? 그것은 필자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너무나 자명한 진리를 인정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어남의 순서는 있지만 죽음의 순서는 없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그러기에 많은 사람들이 죽음이 지금 현재에 있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 먼 훗날의 일이라고 잘못 알고 있고 무책임하게 행동한다.

무엇이 삶인가? 자신의 의지에 의해 태어난 사람은 없다.

나의 의견을 물어 보지도 않고 가문이 정하여졌고 성(姓)이 정해졌다.

그러기에 이 삶을 나에게 선물하신 분의 명령을 따라 사는 것이 생명이다.

내 생명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만약 내가 내 생명의 주인이라면(?) 나의 태어남과 죽음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이 무엇인가? 죽음(死)은 하루 저녁의 비수처럼 날아오는 것이다.

죽음이 올 때는 나이도 명예도 부자나 가난한 자도 고려하지 않는다.

다만 생명을 주신 분이 부르시면 불려 가는 것이다.

그러나 허망하거나 허무해 하지는 말자. 죽음은 인생의 종말이 아니라 삶의 또 다른 하나의 변화이기 때문이다.

삶과 죽음의 진정한 의미를 생각할 때 우리는 삶에 대해 진지하게 되고 책임을 가질 수 있다.

기독교에서의 종말은 흔히 말하는 세상의 종말이 언제 어느 시기에 있다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오늘이 종말이라는 역사적 의식으로 살아갈 것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기에 오늘이 나의 마지막이다! 오늘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나의 마지막 시간이다.

우리 모두 오늘 만나는 그 한 사람이 '내가 이 땅에서 만나는 마지막 사람이다!' 는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며 나누고 축복하여 죽음을 이기는 삶을 살아가길 소망한다.

이장환 칠곡 영언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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