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친일 가수'(?) 백년설 편견 깨기

입력 2003-08-15 09:10:00

'번지 없는 주막'과 '나그네 설움'. 일제시대 한국 대중음악사는 이 두곡을 빼고는 설명이 어렵다.

그러나 이를 부른 가수 '백년설'(본명 이갑용)의 존재는 역사의 한편으로 밀려나 제대로 대접을 받지 못하고 있다.

세월의 무게도 있겠지만 여기에는 '친일 아니면 반일'이라는 이분법적 잣대에서 그가 '친일'로 내몰린(?) 영향도 적지 않다.

대구시장을 지낸 이상희(72)씨가 쓴 백년설의 일대기, '오늘도 걷는다마는'은 이러한 편견에 대한 항변서다.

그는 "친일 아니면 죽음이라는 상황에서 백 선생이 죽음을 택하지 못했을 뿐"이라며 "조국 잃은 민족의 애환을 노래로 담아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그를 협박에 못이겨 부른 친일가 몇곡으로 폄하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한다.

실제 진주의 남인수, 목포의 이난영, 울산의 고복수 선생이 국민적 가수로 추앙받으며 동상은 물론 가요제까지 열리는 것에 비하면 백년설 선생의 흔적은 초라하다.

그의 고향인 경북 성주에 세워진 노래비 하나가 전부일 뿐이다.

책에서 말하는 백년설은 친일이 아니라 오히려 반일주의자다.

1915년 성주군 예산리에서 태어난 백년설은 독립운동을 하던 친형이 옥사를 하면서 어릴적부터 철저한 반일 감정을 품고 자랐으며 성주농업학교 재학때는 동맹휴학을 주도하다 일경에 끌려가 고초를 겪기도 했다.

특히 그를 일약 '스타'로 만든 '나그네 설움'은 40년 항일운동과 연루된 혐의를 받은 백년설 선생이 작사자 조경환과 함께 경기경찰부 고등계에 끌려가 조사를 받고 난뒤 식민지 국민의 설움을 토로하기 위해 만든 곡. 번지없는 주막 또한 일제의 혹독한 식민 지배에 대한 항거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전 시장은 "백 선생이 남방군도에 끌고가겠다는 협박에 굴복해 '아들의 혈서' 등 친일가를 불렀으나 엄청난 인기속에서 스캔들 한번 없을 정도로 깨끗한 삶을 살아간 분"이라고 말했다.

백년설은 63년 가요계에서 은퇴한뒤 78년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으나 80년 65세를 일기로 숨을 거두었다.

한편 백년설 추모사업회 회장을 맡고 있는 이 전 시장은 "올 5월에 처음 열린 백년설 가요제를 내년부터는 전국적 행사로 키워 노래비가 있는 성주읍 성밖숲에서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재협기자 ljh2000@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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