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근로자들,자국 선수단 응원 연습에 한창

입력 2003-08-14 13:52:33

U대회에 참가하러 오는 고국 선수단을 기다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지금 만감이 교차하고 있다.

반가움이 솟구치고 목이 터져라 고국팀을 응원하다 보면 타향살이로 지친 심신도 달랠 수 있으리라 싶지만, 공장 일로 시간을 낼 수 없거나 돈이 없어 초조해 해야 하는가 하면 불법체류자여서 모습을 드러낼 수 없어 애태우는 사람도 적잖은 것.

지난 12일 저녁 대구외국인노동상담소(대명동)에서는 중국.스리랑카.필리핀인 근로자들이 자국 선수단 응원 연습에 한창이었다.

지난 주 결성됐다는 300여명 규모의 중국응원단은 규모, 조직력, 열기 등 모든 면에서 한국의 '붉은 악마'까지 능가하는 응원전을 펼칠 것이라고 했다.

이미 수백개의 오성홍기를 자체 제작해 경기장을 온통 물들이기로 했고, 중국 국가 등 3, 4곡의 응원가, '중국 파이팅' 등 응원 구호도 제정해 기싸움에서도 상대를 완전 제압키로 했다는 것.

"입국 3년째이지만 이렇게 설레기는 처음"이라는 산둥성 출신 쓴입강(26)씨는 "먼젓번 U대회에서 우승했듯이 이번에도 중국의 저력을 다시 한번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큰소리 쳤고, 대구 산격동의 한 자수공장에서 일한다는 이하오(24.여)씨는 "월드컵 경기 때의 '붉은 악마'를 능가하는 응원으로 우리 선수들이 멋지게 경기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실제 경기장엔 몇명이나 나갈 수 있을지 어느 누구도 장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하오씨와 같은 공장에서 일한다는 이쿤(30)씨는 "하루 12시간씩 2교대로 근무하기 때문에 경기장까지 갈 시간이 날지 모르겠다"며 "사장님이 근무시간 조정 같은 배려를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콰지방(24)씨는 월급 150여만원의 대부분을 본국으로 송금하느라 입장권 살 돈이 없다며 "좋아하는 축구 경기만 응원하러 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중국 응원단원들은 특히 화교들과의 공동 응원 계획이 무위로 끝났다며 실망하고 있었다.

남북한 대치 상황에 동병상련을 느껴왔다는 구궈봉(24)씨는 "화교들과는 여전히 거리감이 있는 것 같다"며 "U대회 기간만이라도 같은 민족임을 새롭게 느끼고 싶었다"고 아쉬워했다.

스리랑카 응원단은 규모가 작지만 조용하고 실속있는 응원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대구 거주 스리랑카인 400여명 중 30여명이 소수 정예 응원단으로 나서기로 했다는 것. 이미 멤버가 확정돼 대회 기간 중 휴가를 내기로 했으며, 각자 10만원씩 갹출해 조만간 국기 등 응원용품을 준비하고 응원계획도 짤 예정이라는 이야기였다.

고국 선수들을 위한 조촐한 다과회도 마련하겠다고 했다.

성서공단 자동차부품 공장에 근무하는 인두니(25)씨는 "비록 소수지만 우리 선수들에게는 큰 힘이 될 것"이라며 "휴가를 내서 경기장에 꼭 나갈 계획"이라 했고, 입국 4년째인 말(30)씨는 "야간근무를 하는 기간이지만 잠을 못자더라도 응원하러 나가겠다"며 '자여웨와'(파이팅)를 외쳤다.

필리핀 응원단도 준비에 못잖게 열심이었다.

'챔피언 송' 등을 공식 응원가로 준비했는가 하면, '마부하이 필리핀'(필리핀 만세)을 주된 구호로 채택했다고 했다.

순수한 대학생 축제인 점과 자국내 관례에 따라 국기는 흔들지 않을 예정이라고

하지만 이런 가운데도 필리핀 응원단원들의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아 보였다.

다른 나라보다 근로자가 적을 뿐 아니라 대부분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특히 불법 체류자가 많아 직접 경기장에까지 나가 응원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때문에 'TV 응원'을 계획하는 사람이 많았고 열심히 응원을 준비하면서도 상당수는 기자와의 인터뷰를 거절하기도 했다.

필리핀 응원단을 이끌고 있는 리첼(24.여)씨는 "불법 체류때문에 붙잡혀 추방당할까 봐 경기장에 가지 못할 친구가 많다"며 "TV응원단을 경기장 응원단과 별도로 운영키로 했다"고 전했다.

불법체류자라는 노웰(30)씨는 "그래도 좋아하는 농구 경기장만큼은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찾을 것"이라 했지만, 리첼씨는 "U대회가 진정 모든 세계인의 '하나 되는 꿈'을 이루려면 이주노동자 강제추방부터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들의 응원 연습을 지켜보던 파키스탄인 칸(32)씨와 방글라데시인 사비르(30)씨는 "우리는 아직 독자적인 응원단을 만들지 못했다"며, "조만간 다국적 응원단이라도 구성해 응원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최창희기자 cch@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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