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의 소하천(하)-복개천 시민 휴식공간으로

입력 2003-08-12 09:13:16

20여년 전만해도 범어천엔 메기, 뱀장어, 미꾸라지, 버들치, 붕어, 송어, 자라 등이 헤엄치고 다녔다.

또 떡버들 등 아름드리 나무들이 물가에 이어지고 매미, 잠자리, 풍뎅이, 하늘소, 참새, 박새 등 각종 곤충과 새들도 이곳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그러나 이곳은 점점 악취 민원이 빈발하는 하수도로 전락했고, 때문에 콘크리트 등 복개 구조물로 덮였다.

복개되지 않은 구간도 절벽같은 콘크리트 제방 탓에 자연 하천으로서의 모습을 잃었다.

지역의 도시 하천을 살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악취가 난다고 무조건 덮을 게 아니라 오수관 분리 시설 등 수질 개선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고 자연형 하천으로의 복원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것. 서울시는 지난달 청계천을 자연형 하천으로 되돌리기 위한 '대역사'를 시작했고, 양재, 홍제, 불광천 등 수도권 하천들도 자연형 하천으로 변신 중이다.

하수도로 전락한 지역의 도시 하천들을 살리기 위해선 무엇보다 시 차원의 중.장기적인 대책이 시급하다.

더이상의 복개를 중단하고 오수관 분리 설치와 함께 점차 복개 구조물을 헐어 나가는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는 것. 대구시 한 공무원도 "지금부터라도 시가 복개가 아닌 복원을 원칙으로 하천 관리에 힘써야 한다"며 "도시 하천의 복원 여부는 전적으로 행정당국의 의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도시 하천을 살리기 위해선 먼저 지역 하천들에 대한 철저한 실태 조사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진단한다.

복개되지 않은 지역에 대한 수중 및 수변 식생 조사와 함께 복개 구조물을 헐고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는 구간을 조사해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선 복개 구간의 이용실태 및 교통량 조사가 이뤄져야 하고 복원 가능 구간에 대해선 우회도로 및 이면도로 확보를 위한 연구 등 교통정책도 수립돼야 한다.

하천 복원을 위한 행정업무의 일원화나 부서간 협조, 교류도 필수적이다.

도시 하천 복원에 성공한 다른 도시나 국가들의 사례 조사 및 연구는 기본이다.

이를 통해 지역의 특성과 실정에 맞는 복원 방법을 찾아 적극 참고해야 한다.

또 자연형 하천으로 복원될 경우 시민들에게 미치게 될 정서, 교육, 환경적 영향에 대한 연구도 필요하다

미복개 구간의 콘크리트 제방을 자연형으로 전환하는 작업도 우선 순위 중 하나. 직각 형태의 콘크리트 제방을 헐고 흙이 퇴적될 수 있는 완만한 자연 제방으로 바꾸고 수변 식생을 조성하는 등 자연형으로 복원해야 한다.

미복개 구간을 자연형으로 전환한다고 해서 오수 유입을 근본적으로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전체적인 하천 복원을 위해 선행돼야 할 작업이라는 것.

복개 하천 복원 사업의 핵심은 복개 하천의 구조물을 허는 일이다.

하천 실태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도로 이용률이 낮은 구간 등 복원 가능한 지역부터 우선적으로 복원에 들어가야 한다.

맑고푸른대구21추진협의회 류병윤 사무국장은 "범어천 등 지역 복개 하천들의 복개 구간 중 도로 기능보다 주로 주차장으로 이용되고 있는 대표적인 구간부터 우선 시범적으로 복원해야 한다"고 했다.

통행량이 많은 복개 구간도 범어천의 동대구로 구간처럼 도로 중간에 개방형 물길을 내 자연형 하천으로 조성하고 양쪽을 도로로 사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다.

계명대 환경대학 김해동 교수는 "시내 도로의 가장자리 차로는 대부분 불법 주.정차로 인해 없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가장자리 차로의 불법 주.정차만 막아도 최소 왕복 2개 차로 정도 면적의 하천 물길은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천 복원을 위해선 오수관 분리 설치는 필수다.

현재 달서, 대명, 범어천 등 복개하천 대부분은 오수관이 따로 설치돼 있지 않아 수질 오염에 무방비로 노출된 만큼 차집관거를 설치, 오수의 하천 유입을 막아야 한다고 했다.

대구시 하수과 관계자는 "차집 관거 시설에 대한 용역조사가 진행 중인 만큼 결과가 나오는대로 공사를 시작할 계획"이라며 "내년부터 범어천에 차집관거 설치를 시작하고 달서천 등 다른 복개 하천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소하천을 지키는 것도 복개를 허는 것 만큼 중요하다.

팔거천, 욱수천, 매호천 등 복개되지 않은 도시 하천들의 경우 오수를 별도로 모으는 차집관거가 설치돼 있는 만큼 조금만 관심을 쏟으면 도심내 휴식 및 친수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

이를 위해선 행정기관은 물론 하천 인근 학교, 아파트 등 지역민들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한다.

이미 대구시교육청은 시내 35개 초.중.고교와 함께 인근 13개 하천을 각각 청소하고 모니터링하는 등 지역 소하천 살리기 사업에 나섰다.

고산성당도 성당 신자들을 중심으로 인근 매호천 살리기 환경운동을 벌이고, 칠곡 주민 및 학생들로 구성된 '팔거천 사랑모임'도 팔거천 살리기 운동을 추진하고 있다.

또 하천 복원을 위해선 하천 발원지 관리 및 유지수 확보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범어천의 경우 지산하수처리장 처리수를 일부 범어천으로 유입하면 수질 개선은 물론 운치있는 하천으로 복원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무엇보다 시민들이 쉽게 접근해 편하게 쉴 수 있는 사랑받는 하천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자연형 하천 조성 시 하천으로 쉽게 내려갈 수 있는 계단식 통로를 만들고 하천 주변엔 잔디, 나무 등 식생을 조성, 휴식 공간으로 이용토록 하는 등 종합적인 계획이 필요하다는 것. 도심 한복판에 하천수가 흐르고 각종 수변 식생이 어우러진 공간이 만들어지면 도시 하천이 더이상 지금과 같은 애물단지가 아닌 대구의 관광지, 명소로 변모될 수도 있다.

영남자연생태보존회 류승원 회장은 "도시 하천을 살리기 위해선 하천 복개 구조물 및 콘크리트 제방 철거 등의 하천 형태 복원 사업과 함께 집수역 등 하천 유역에 대한 각별한 관리도 절실하다"며 "하천 발원지나 집수역에 많은 축사, 폐광산이나 위락시설 등을 방치하는 한 하천 오염 문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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