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뒤 청와대에서 대구지역 신문·방송사의 편집·보도 국장을 초청해 대통령과 질의 응답식의 대화자리를 갖는다기에 유익한 만남이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몇마디 고언을 드릴까 한다.
만남의 시기가 때마침 언론에 대한 대통령의 심기가 언짢은 시점인데다 상대도 노 정권에 대해 아직은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는 지역의 언론사 사람들이어서 행여 전투적이거나 적대적인 언론 관련 발언이 또 튀어나올까 하는 노파심도 없지 않아서다.
먼저 요즘 노 대통령의 언론에 대한 심기를 짚어보면 대체로 이런 것이 아닐까 짐작된다.
흔히들 하는 얘기로 술이 반병쯤 남아 있는 술병이 있다고 했을때-.
이왕이면 '아직도 반병이나 남아 있으니 천천히 즐겁게 마시자'고 써주면 어디가 덧나느냐는 게 노 대통령의 생각일 것이다.
왜 하필 내가 들고 있는 술병에 대해서는 '겨우 반병 밖에 안남았다
술이 곧 거덜나게 됐다'고 삐딱한 쪽으로 써야만 직성이 풀리느냐는 논리다.
반대로 언론은 정권쪽이 '나는 이렇게 꽃미남인데 왜 사진은 못생긴 인물로 찍어 내느냐'며 제얼굴 탓은 않고 사진사에게 시비거는 격이라고 맞선다.
맘에 드는 잘난 사진을 원하면 당신네들이 먼저 좀 잘 생겨 보라는 논리다.
이같은 언론과 권력의 반목은 서로 처지를 바꿔 생각할 줄 아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양보가 없는 태생적인 긴장관계에서 비롯된다.
과거 왕조시대에 임금이 언관(言官)을 유수배(遊手輩)라 비하한 것이나 오늘날 민주국가의 참여정부가 '저질 언론인' 운운한 것이나 둘사이의 긴장관계는 빼닮듯이 바뀐 게 없다.
여전히 투쟁적이고 소모적이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어차피 원초적 천적 관계는 인정하되 상호 공익과 국익을 지향하는 상생(相生)의 도(道)를 찾아야 한다고 본다.
길(道)을 찾는 의미에서 권력과 언론의 속성과 생리를 깨우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 이야기를 놓고 권언상생(權言相生)을 함께 생각해 보자.
우리가 어릴때 들은 임금님의 당나귀 귀 이야기는 두가지다.
하나는 신라 경문왕의 귀가 당나귀 귀였는데 복두(관복을 입을때 쓰는 모자)를 만드는 복두장이만이 왕의 부끄러운 비밀을 알고 감히 발설을 못해 참고 있다가 혼자 대나무 숲에 가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친 뒤 바람이 부는 날이면 갈대숲에서 '당나귀 귀-' 소리가 났다는 설화다.
똑같은 얘기는 그리스 신화에도 나온다
마이더스 왕이 숲의 신 '판'과 아폴론의 피리 시합에 끼어들어 허튼소리를 한 벌로 아폴론이 당나귀 귀 처럼 큰 귀로 만들어 버렸다.
하인이 왕의 비밀을 혼자 참다 못해 강 기슭에 가 땅을 파고 '마이더스 왕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친 뒤 흙을 묻었는데 그 뒤 갈대가 무성히 돋아 바람이 불면 같은 소리가 퍼져 모든 백성이 그 비밀을 다 알게 됐다는 내용이다.
왕이라는 신분이 상징하는 '권력'과 하인이나 복두장이라는 민초가 상징하는 민중 '언론' 사이에서 한쪽은 힘으로 숨기려 하고 한쪽은 억눌린 표현의 자유를 숨어서라도 끝내 토로해내고 싶어 하는 상호관계를 '당나귀 귀' 이야기는 시사해 준다.
당나귀 귀 이야기를 예로 들어 본 것은 이 신화속에 의외의 권언상생 해법이 숨어 있을 수 있음을 살펴보자는 뜻에서다.
마이더스 왕이나 경문왕의 경우 실제로 당나귀 귀는 아니었을 것이다.
다만 보통사람 귀보다 좀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하인과 복두장이는 '당나귀 귀'라고 했다.
권력자 입장에서 보면 약간 큰 정도의 귀를 당나귀 귀라는 과장되고 희화화 된 비유로 표현한 것이 괘씸할 것이다.
반대로 하인과 복두장이의 신분으로 상징된 말하고 싶은 자들(언론)은 '조금 큰 귀'나 '약간 큰 귀'보다는 '당나귀 귀'라는 외침이 더 맘에 들었을지 모른다.
왕(권력)으로서는 민초의 호기심 담긴 느낌 쯤은 가벼운 아량으로 덮어줄 수 있어야 한다.
반대로 복두장이(언론)도 겨우 보통사람 보다 한치쯤 더 긴 귀를 혼자만 먼저 알아낸 정보라는 이유로 당나귀 귀로 부풀리고, 대나무 숲일 망정 바깥에 소문내는 것이 예(禮)인지를 생각해볼 줄 알아야 한다.
당나귀 귀 이야기에 담긴 교훈대로 권력과 언론간에 아량과 예(禮)의 도(道)가 통할 수 있다면 우리 모두 첩첩이 쌓인 국정의 난제들을 앞에 두고 쓸데없는 권·언간의 신경전으로 국론을 소모하지 않아도 되리라.
오늘부터라도 신문 시사만화에 곧잘 등장하는 노 대통령의 큰 코를 그린 캐리커처를 두고 '주먹코'나 '딸기코'라고 하기보다 이왕이면 '대통령 코는 사자코'라고 추켜올려보자.
비판속에도 서로의 인간적 애정이 담겨 있으면 '언론과의 평화'는 보다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김정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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