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쓸모없는 존재는 없다

입력 2003-08-08 15:10:43

권정생 선생의 동화 '강아지똥'은 우리에게 이런 가르침을 준다.

"하느님이 만드신 것 중에 쓸모없는 존재는 하나도 없다". 보잘것없는 강아지똥조차, 자신을 녹임으로써 거름이 되고, 마침내 민들레꽃으로 환생하게 된다는 이 아름다운 이야기를 읽고 감동받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 소중한 메시지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는 외면당하고 있다.

모든 것이 '시장가치'로만 판단되는 이 끔찍한 세상에서, '생산능력'이 없다고 간주되는 노인과 장애인들은, 아예 '쓸모없는 존재'로 치부되거나, 기껏해야 복지사업의 '대상'으로 여겨질 뿐이다.

국가의 복지정책은 흔히 사회의 '진보'를 가늠하는 잣대로 여겨진다.

물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배려하는 관점이 정책과 제도의 토대를 이루어야 한다는 것은 길게 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노인과 장애인들을 복지의 '수혜자'로만 보는 복지사업은 필연적으로 인간을 '대상화'한다.

경북 구미에서, 지역공동체를 활성화함으로써 노인들이 신체적, 정신적, 사회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돕는 '시니어클럽'을 운영하는 성공회 천경배 신부는 "대상화는 우리가 맞고 있는 모든 위기의 뿌리"라고 지적한다.

이런 생각에서 구미 시니어클럽은 '사랑고리'라는 지역화폐 시스템을 도입해 운영하고 있다.

지역화폐에 관해서는 고철기씨의 책 '공동체경제를 위하여' 등에 잘 소개되어 있지만, '사랑고리'는 특히 미국의 에드가 칸 교수에 의해 개발된 '타임달러'를 모델로 하고 있다.

이 제도는 회원끼리 다른 회원에게 봉사한 서비스에 대하여 타임달러를 받아 저축한 뒤, 나중에 자신이 도움이 필요한 경우에 저축한 타임달러를 내고 도움을 요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말하자면 노인과 장애인이 도움을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지혜와 능력을 남에게 베풀 수 있는 협동적인 '교환시스템'인 것이다.

시니어클럽이 칸 교수의 책을 번역해 발간한 책자 제목이 '더 이상 사람들을 내팽개치지 말라'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우리는 지금 노인과 장애인들을 '쓸모없는 존재'로 내팽개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변홍철 녹색평론 편집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