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 어느 곳이나 약소민족이 설 땅은 많지 않다. 나름대로 이성과 합리성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현대에 와서도 이러한 경향이 별반 사라지지 않는 것을 감안하면 오로지 힘만이 횡행하던 중.근세는 더욱 그러했다.
하루가 멀다하고 계속된 인간의 점령욕은 수많은 민족을 멸종시키거나 겨우 명맥만 유지하는 수준으로 떨어뜨렸다. 미국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그랬고, 호주의 애보리진이 그랬다.
이러한 원주민 말살의 중심에는 포악한 유럽 백인들이 있었다. 좁은 땅덩어리에서 고대시대부터 생존을 위해 투쟁을 벌여온 그들의 역사를 보면, 그리고 수많은 전쟁을 통해 축적된 전쟁기술과 무자비함을 보면 그들이 중세~근대때 전 세계를 대상으로 처참한 살육전을 전개한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유럽인들의 관심이 다소 멀었던 시베리아의 광활한 대지도 예외는 아니었다. 모스크바, 키에프, 상트 페테르부르크 등 유럽쪽에 가까웠던 러시아인들이 영국.스페인.포르투갈 등이 신대륙을 찾아 나설 즈음 시베리아로 동진한 것이다.
안나 레이드의 '샤먼의 코트-사라진 시베리아 왕국을 찾아서'(윤철희 옮김, 미다스 북스 펴냄)은 아메리카 인디언의 역사보다도 더 처절했던 숨겨진 시베리아의 원주민이야기다.
'시베리아를 시베리아인에게'를 모토로 쓰여진 이 책을 위해 지은이는 시베리아의 대표적인 9개의 민족인 타타르, 한티, 부랴트, 투바, 사하, 아이누, 니브히, 우일타, 추크치족을 찾아가 조사했다. 이들 종족들은 근대이후 카자크족에 의해 침략당하고 제정러시아시대 차르에게 노예화됐으며 스탈린 치하에서는 총살당하거나 죽음의 노동수용소로 불려지는 굴라크로 보내졌지만 그들의 역사는 어디에서고 제대로 다뤄지지 않았다.
시베리아를 처음 침략한 것은 1585년 예르마크가 지휘한 러시아 군대였다. 당시 시베리아가 유혹의 대상이 됐던 것은 '어둠보다 까맣고 백설보다 고운 검은담비 모피' 때문이었다. 이 대신에 들어온 것은 매독과 천연두, 담배와 보드카라는 값비싼 대가였다.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은 이들의 정복에 대항해 대규모 반란을 일으키기도 하지만 결국 모든 원주민들이 학살과 회유속에 러시아로 편입됐다.
지은이는 16세기말 예르마크가 시베리아를 침략했을 때부터 연대기적으로 시베리아의 역사를 풀어나가고 있다. 책의 제목은 이들의 역사와 함께 오늘 날까지 남아있는 샤머니즘의 모습을 함께 추적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은이의 결론은 이렇다. 시베리아는 더 이상 톨스토이나 도스토예프스키의 저작에 나타난 것처럼 '유배의 땅' '얼어붙은 변경의 식민지'가 아니며 짐작조차하기 힘든 천연자원과 원시문화가 숨쉬는 기회의 대지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인들은 조만간 자신들의 영토에 대한 권리와 정치적 권리, 자신들의 문화와 언어에 대한 존중과 지원을 요구하고 나설 것이다. 인류문화의 원시적보고이자 광활안 기회의 땅 시베리아의 원주민들에게 그들이 마땅히 차지해야할 자리를 찾아주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정지화기자 jjhw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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