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감정 이렇게 풀자(5)-이탈리아

입력 2003-08-08 09:10:43

명품과 패션의 나라 이탈리아. 하지만 이곳에 드리워진 남북간 갈등은 유럽통합의 신세기에도 국가발전의 걸림돌이 될 만큼 심각하다.

갈등의 원인은 경제 격차. 로마를 중심으로 한 북부 이탈리아엔 인구의 45%가 살고 있지만 생산량은 국가 전체의 70%를 차지한다.

남부 이탈리아인의 상대적 박탈감도 심각한 수준이다.

이탈리아 인구 5천700만명 중 기본적인 의식주 해결에 어려움을 겪는 빈곤층은 약 800만명. 이탈리아 통계청이 발표한 2001년 빈곤수준에 관한 보고서에 따르면 북부의 수준은 나날이 개선되고 있지만 남부는 오히려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 전체의 빈곤층 숫자는 큰 변화가 없다.

하지만 북부에선 빈곤층이 지난 1999년 5.7%에서 5%로 줄어든데 비해 남부에선 23.6%에서 24.3%로 늘었다.

특히 4인 가족의 한달 소비액이 국민 1인당 평균 소비액에도 못미치는 극빈가족은 94만 가구(전체의 4.2%)이며, 숫자로는 302만여명에 이른다.

이들 극빈층 중 무려 4분의 3이 남부에 집중돼 있다.

핵가족보다는 대가족의 빈곤층 비율이 높았고, 노인과 함께 살거나 노인들로만 이뤄진 가정과 가장이 고졸 이하의 학력을 가진 가정의 빈곤층 비율이 훨씬 높았다.

이러한 것은 남부 이탈리아 가족 구성의 특징과 고스란히 일치한다.

남북간 격차는 산업화 이전부터 시작됐다.

북부에선 집약적 농업을 통해 자영농이 발달했고, 남부에선 '라티푼디움'이란 대토지 경영을 통해 대지주와 소작농이 주를 이뤘다.

또 중세 북부에선 베네치아, 밀라노, 제노바, 피렌체 등 경제력을 가진 도시국가들이 성장한데 비해 남부에선 여전히 봉건적인 생산체제에 머물렀다.

1861년 이탈리아 통일이 이뤄졌지만 남부는 경제발전에서 소외되며 낙후성을 면치 못했다.

통일을 주도한 세력은 북부 피에몬테주에 있었다.

때문에 국가개발 정책도 북부 산업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쪽으로 치중됐고, 남부는 산업자본의 소비시장이자 값싼 노동력의 공급 역할을 떠맡게 됐다.

2차대전 직후 중앙정부는 남부를 지원하기 위한 '남부개발기금'이란 기구를 설치해 천문학적인 액수의 돈을 남부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수십년간 지속된 사업은 결국 실패한다.

물고기 낚는 방법 대신 일정량의 물고기를 줌으로써 민심을 달래려 했던 방법은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또 사회간접자본에 투입된 돈의 상당부분은 지역 정치인과 마피아의 수중에 넘어갔고, 결국 이같은 부패는 지난 1992년 실시된 대대적인 정치권 사정작업인 '마니풀리테(깨끗한 손)'를 통해 전모가 드러났다.

특히 1996년 총선에서 남부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을 약속한 좌파연합이 승리하자 밀라노를 거점으로 둔 우파정당인 북부동맹은 노골적인 지역선동을 부추겼다.

북부동맹의 당수인 움베르토 보시는 "게으르고 무식한 남부인들과 함께 살 수 없다"며, 북부 8개주를 중심으로 '파다니아 공화국'이란 독립국가를 선포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독립국가 선포는 다른 주들의 반발에 부딪혀 결국 무산되면서 한바탕 정치 쇼가 되고 말았지만 북부동맹은 북부민들로부터 상당한 지지를 받았었다.

이탈리아 유력 일간지인 '꼬리에레 델라 세라'의 알베르토 베르티첼리 기자는 "2001년 총선에서 북부동맹의 기세가 한풀 꺾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밀라노 주변지역에서의 지지율은 높은 편"이라며 "북부지역의 독립을 지지한다기 보다는 '우리가 낸 세금으로 남부를 먹여살리는 일은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마피아에 대한 불신도 상당하다.

북부민들은 남부민하면 으레 마피아를 떠올릴 정도다.

밀라노 토박이인 레나타 브레따(70) 할머니는 "남부사람들은 꼴도 보기 싫다"며 몇해전 시칠리아로 관광갔을 때 호텔 주방장과 다툰 경험을 얘기했다.

브레따 할머니는 "만약 마피아가 없었다면 일자리도 얻지 못했을 거라는 주방장의 말에 화가 나서 싸웠다"며 "남부사람들은 국가나 지방정부보다 마피아에 더 의지한다"고 분개했다.

그러나 원색적인 비난에도 불구, 국익을 해치는 지역감정은 단호하게 부정한다.

지난 1993년 지방선거에서 57%의 압도적인 득표율로 밀라노를 장악했던 북부동맹의 인기도 차츰 시들해지고 있다.

1998년 지지도 조사에서 17.3%를 기록하더니 지난 6월엔 9.3%로 내려앉았다.

베르티첼리 기자는 "북부동맹의 지지율 하락과 지역감정 해소를 직결시키기는 다소 무리지만 남북간 인식차가 크게 개선된 것은 사실"이라며 "북부인들도 극단적인 분리주의가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남부의 가장 심각한 문제인 실업률도 정책적인 배려를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찾고 있다.

북부의 평균 실업률이 5%대인데 비해 남부는 25~35%라는 살인적인 실업률에 시달리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남부에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칠리아섬과 칼라브리아주를 연결하는 연륙교 공사를 개시했고, 남부지역에 기업을 유치하는데도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남부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반감을 갖고 있던 북부인들도 "한번 더 두고보자"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회사원인 파비오 카발레라씨는 "남부에 대한 지원에 반대하기보다 그만큼 지원했음에도 변하지 않는데 반감이 있다"며 "이탈리아 국익을 위해서도 낙후된 남부의 개발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취재팀=서종철·김태형·김수용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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