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소농과 민주주의

입력 2003-08-01 09:26:02

지난 7월28일 청와대에서 농림부의 '주요 농정추진 현황보고'가 있었다는 기사를 읽었다.

세부적인 내용과 그 진의를 아직까지는 충분히 검토하고 이해하지 못했지만 당장 몇가지가 눈에 거슬린다.

무엇보다 '영농규모화'를 계속 추진하겠다는 것과 '농업구조를 시장 지향적으로 과감히 개편'하겠다는 대목에서는, 이 농정이 지속가능한 전망을 갖고 있지 못함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되어 안타깝다.

결국 경쟁력 없는 소농을 '퇴출'시키고 오직 시장논리로 농업을 '산업화'하겠다는 오래된 구호의 되풀이 아닌가.

농사꾼이자 대구 한살림 이사인 천규석 선생은 '돌아갈 때가 되면 돌아가는 것이 진보다'에서 정부의 영농규모화 정책, 즉 기업농 정책이 이미 완전히 실패했음을 논증하면서, 소농을 살리고 보호하는 정책 이외에는 우리 농업과 농촌을 살리는 길이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최근 유행처럼 언급되는 '환경농업'이야말로 소농이 아니고는 결코 실현할 수 없다고 하면서 이렇게 덧붙인다.

"소농정책은 환경농업 정책의 필수 전제 조건일 뿐만 아니라 정치와 경제, 문화 민주화의 초석이고 원천이다.

모든 생명활동의 기본인 땅이 소수에 독점당하고서 무슨 사회의 민주화인가?" 한마디로 자립적인 소농은 민주주의의 바탕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소농의 근본적인 의의를 강조하는 것은 천규석 선생만의 생각은 아니다.

'소농―누가 지구를 지켜 왔는가'라는 책에서, 그 자신 농사꾼이기도 한 일본의 저명한 농학자 쓰노 유킨도(津野幸人)는 '진짜 농민'인 소농이야말로 인류 생존의 진정한 토인 땅과 자연환경을 지켜온 주체였을 뿐 아니라, 참다운 의미에서 민주주의의 초석이었음을 강조하고 있다.

소농은 예나 지금이나 작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그 땅을 사랑하고 가꾸며, 이웃들과 서로 돕고 살 수밖에 없다.

그런 생존조건 때문에 소농은 자본과 국가에 매인 지식인, 전문가, 관료들에게는 절대로 기대할 수 없는 자주적 정신과 협동적 자치의 삶의 원천이 되어왔다.

이런 '뿌리'를 말려 죽이고서 우리가 미래를 논하는 것이 도대체 가능한 일일까.

변홍철(녹색평론 편집장)

최신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