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길라잡이-'언어의 감옥'탈출 창의적 생각 실천 가능

입력 2003-08-01 09:30:36

영화 '빠삐용'은 마지막 장면이 압권이지요. 거센 파도가 상어 떼와 함께 몰려와 해안을 할퀴고 있는 그 무인도에 친구 드가를 남겨 둔 채, 야자 열매 포대를 끌어안고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뛰어내리는 빠삐용. 파도를 타고 망망대해로 흘러가면서 "난 자유다…이 놈들아…난 자유다…"라고 외치는 빠삐용의 모습이 점점 멀어지고 탁 트인 바다 풍경이 클로즈업 되면서 끝을 알리는 자막이 떠오르지요.

사람들이 제 스스로 갇혀 지내기 쉬운 감옥으로 '언어의 감옥'이 있습니다.

습관적이고, 상투적이고, 과거지향적이고, 도식적인 생각과 그 생각으로 빚은 말의 철조망으로 둘러싸인 감옥이지요. 빠삐용이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드가는 '탈출이 가능할까?'라는 말을 친구에게 건네는데, 그는 자신의 그 회의적인 말에 갇혀 결국은 무인도에 주저앉게 된 것이지요. 이처럼 '언어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사람들은 자신의 창의적인 생각을 자유롭게 펼치거나 행동으로 실천하기가 어렵습니다.

시는 시인이 새롭게 찾아낸 동네의 하늘이고 땅입니다.

시는 언어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물의 또 다른 표정을 발견하고 그 표정에 꼭 맞게 새로 지은 이름입니다.

시는 빠삐용의 야자 열매 포대이며, 습관적인 지각이나 인식의 낡은 틀을 깨뜨리는 망치입니다.

따라서 시 공부는 새로운 자유의 세계를 찾아 빠삐용처럼 절벽에서 뛰어내리기이며, 생각의 낡은 껍질을 깨뜨리는 망치질이며, 눈을 들어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기입니다.

'산 위에서 보면/학교가 나뭇가지에 달렸어요.//새장처럼 얽어 놓은 창문에/참새 같은 아이들이/쏙쏙/얼굴을 내밀지요.//장난감 같은 교문으로/재조갈 재조갈/떠밀며 날아 나오지요.'이 시를 쓴 김종상님처럼 '산 위에서 보면' 늘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는 학교도 나뭇가지에 달린 새장이 되지요. 장난감처럼 작은 교문으로 걸어 나오는 아이들이 아기새처럼 보일 수도 있지요. '산딸기 세 개/개미나라 가로등//꼬불길 어두울까/가로등 세 개' 유경환님의 이 짧은 시 속으로 걸어가면 산딸기 가로등을 지나 개미나라에도 닿을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시의 세계는 어린이들에게 있어서 콜럼버스가 대륙을 발견한 것처럼 또 다른 세상의 열림입니다.

김동국(아동문학가·대구 문성초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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