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성 다사읍 태성그린시티 아파트 102동 지하.
주민 대피소나 창고로 사용되는 다른 아파트 지하와 달리 이 아파트 지하 100여평의 한켠에는 탁구대가 놓였고 또 다른 한켠은 4천여권의 책이 갖춰진 도서관으로 꾸며져 있다.
한여름인 지금은 900여 가구 3천여 주민들의 더없이 좋은 피서장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중. 아파트 주민 홍미선(33·여)씨는 "열흘 간격으로 도서 대여 차량이 아파트를 찾아오긴 하지만 이 도서관은 아무 때나 들를 수 있어 매우 편리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공간은 지난 3월까지만 해도 탁구 치러 온 노인들의 잡담과 휴식 공간일 뿐이었다.
전체 주민들의 마을 도서관으로 꾸민 주체는 마을 노인회. 이만영(73) 회장은 지난 1월 재활용품 분리 배출 때 좋은 책들이 단순한 종이류로 분류돼 버려지는 것을 보고는 문득 "책을 모아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했다.
이 회장이 먼저 집에 있던 300권을 내놓았고 흔쾌히 동의한 노인회 임원들이 '장서 모으기 운동'을 시작했다.
주민들이 매주 수요일 밤에 분리 배출하는 책들도 노인들이 일일이 나서서 검색했다.
다음날 수거 차량이 도착하기 전에 재빨리 지하 도서관으로 옮기려는 것. 아파트 현관 게시판에 장서 수집 안내문을 붙이고 방송을 통해서도 홍보했다.
열의에 공감한 주민들이 경로당으로 책을 가져오기 시작했다.
노인들은 책장 마련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이사 가는 사람들이 내다버리는 진열장을 챙겨 옮겼다.
동네에 있던 가구공장은 다른 지역으로 옮겨가면서 흠 있는 진열장을 노인들에게 전해줬다.
1, 2월 추운 겨울에도 노인들은 리어카를 끌고 진열장을 실어 날랐다.
먼지를 털고 물걸레로 닦는 일이 힘들었지만 노인들은 즐겁게 해 냈다.
드디어 마을 도서관이 문을 연 것은 지난 4월 초. 그때까지 수집된 책은 2천여권. 위인전·문학·교육·경제 등 38개 분야로 분류돼 진열됐다.
개관식 때는 아파트 부녀회가 음식을 장만해 동네잔치를 벌였다.
그리고 문 연지 석달된 지금은 책이 4천여권으로 불었다.
그 사이 130여명이 300여권의 책을 대출해 가는 등 이용도 꾸준히 늘고 있다고 했다.
이 회장은 "책을 앞으로 1만권까지 모을 것"이라고 했고, 주민 이정자(47·여)씨는 "젊은 사람도 생각지 못한 도서관을 노인들이 나서서 만들고 운영하니 너무 고맙고 존경스럽다"고 했다.
이창환기자 lc156@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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