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서울시장은 셀러리맨 신화를 이룬 입지전적 인물이다.
지난 90년 방영됐던 TV드라마 '야망의 세월'은 이 시장을 모델로 한 것이었다
1941년 포항 달동네에서 태어나 고학으로 야간 고등학교(포항 동지상고)를 졸업한 뒤 이태원 재래시장에서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며 대학(고려대 경영학과) 등록금을 마련한 일화는 이미 고전이 됐다.
하지만 대학시절 학생회장으로 6·3시위를 주도해 6개월간 복역한 것이 빌미가 돼 번번이 취업이 좌절됐다.
1964년 우연히 현대건설 신입사원 모집공고를 보고 원서를 냈으나 중앙정보부가 또다시 입사를 막았다.
그래서 청와대에 "한 젊은이가 세상을 자기 힘으로 살려고 하는데 나라가 그 길을 막는다면, 나라가 한 젊은이에게 영원히 빚을 지는 것"이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결국 입사를 허락받았다고 한다.
이 일을 계기로 박정희 전 대통령도 그의 거취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현대건설에 입사한 뒤 12년만인 35세에 사장이 될 정도로 그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전 세계 해외건설현장에서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만들어내며 현대 6개 계열사의 회장을 역임했다.
고(故) 정주영 회장은 과거 이 시장을 가리켜 "저 놈은 신입사원 때 과장 일을 해 과장을 시켰고, 과장을 시켰더니 부장 일을 하고 있어 부장을 시켰고 중역이 되니 사장 일을 하기에 사장으로 승진시켰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정계진출 문제로 정 회장과 결별, 그가 국민당 대통령 선거 후보로 출마했을 때 이 시장은 민자당에 입당, 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지난 98년 당시 자신의 비서관이 선거과정의 금품수수와 관련된 양심선언이 빌미가 돼 2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고 결국 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4년간 국내외를 떠돌며 '야인생활'을 하다 지난해 한나라당 공천을 얻어 서울시장에 당선, 재기에 성공했다.
김태완기자 kimchi@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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