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만 오면 유랑생활을 해요. 지난번 비에도 임시 가설도로가 또 끊겼데요. 친지집에서 또 신세를 졌지 별 수 있나요, 뭐. 이번에는 새벽부터 비가 내리는 걸 보고 출근할 때 갈아입을 옷가지나마 챙겨와서 다행이었어요. 정말 비 오는게 겁이 납니다".
지난해 태풍 '루사'로 마을 진입교량인 상천교가 붕괴되면서 임시로 놓은 가설도로가 평균 70mm의 강우량에도 유실돼 귀가가 어렵다는 소식에 놀라는 기색 하나 없이 담담한 표정을 짓는 30대 직장여성 남모씨.
남씨가 올들어 가설도로 유실로 귀가하지 못하거나 출근하지 못한 경우는 이번까지 자그마치 여섯번째다. 지난 3일엔 가설도로가 물에 잠겨 아예 출근조차 못했고 6월 중순엔 3일씩이나 귀가를 못해 친지집을 떠돌며 팔자에도 없는 유랑(?)생활을 해야만 했다.
남씨가 여자의 몸으로, 그것도 예정에도 없던 외박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이유는 수차례 경험(?)을 통해 얻은 면역성 때문. 남씨는 이날도 우려어린 눈길을 보내는 주변 사람들을 오히려 안심시키는 등 여유를 보였다.
그러면서 자신의 사정은 주변 사람들에 비하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귀띔한다. 하천 건너편 밭에 재배하고 있는 수박을 지난 주말 출하하기로 중간상인과 약속했던 김모씨는 물이 빠지지 않아 낭패를 당했고, 물이 불어난다는 소식에 등교하자마자 곧바로 되돌아 온 초등학교 3년생 유대균(11)군은 다음날도 학교에 못갈 것이라며 울상을 지었던 것.
마을 전체 40여가구 100여명 가까운 주민들은 가교가 유실되면 저마다 한두가지씩 가슴앓이를 해야 한다. 이처럼 작년 수마가 할퀴고 간 수해 현장이 아직까지 복구가 덜 돼 주민들이 곤욕을 치르는 마을은 울진군내에서만도 10여 곳.
근남.행곡을 비롯한 수곡.구산리와 서면 소광.광회.왕피.하원리가 이에 해당하는 마을이다. 이들 마을 주민들은 진입로인 교량이 유실되면서 전적으로 임시 가설도로에 의지할 수 밖에 없어 비만 오면 놀란 가슴이 될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울진군은 정부측이 수해복구비로 가설도로 설치비를 반영해 주지 않는 등 예산 부족으로 별 다른 대안을 내놓고 있지 못하고 있다. 남씨는 "하늘이 한 일이니 불편을 감수하는 건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도 "다리 완공까지는 아직 6개월이나 남았는데 비가 올 때마다 이 난리를 겪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정말 답답하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웬만한 비에도 잠기거나 떠내려가지 않게 임시 가설도로라도 높게 쌓아주었으면 한다는 것이다. 울진.황이주기자 ijhwang@imaeil.com
댓글 많은 뉴스
나경원 "李 장남 결혼, 비공개라며 계좌는 왜?…위선·기만"
이 대통령 지지율 58.6%…부정 평가 34.2%
"재산 70억 주진우가 2억 김민석 심판?…자신 있나" 與박선원 반박
트럼프 조기 귀국에 한미 정상회담 불발…"美측서 양해"
김민석 "벌거벗겨진 것 같다는 아내, 눈에 실핏줄 터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