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은 러시아 혁명과정에서 암흑가와 손잡은 일이 있다고 한다.
아마 반혁명 분자의 암살이나 색출 등 혁명주도세력의 능력이 닿지 않거나 손대기 싫은 더러운 일들을 처리하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혁명 후 이 사실이 알려지자 레닌은 다음과 같이 자신을 변호했다.
"혁명은 흰 장갑만 끼고는 할 수 없다".
이 말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집권세력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집권 과정에서 흰 장갑만 끼고 있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 우리 현대정치사이다.
이는 정치자금 조달에서 특히 그러하다.
요즘 전 국민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는 민주당 대선자금 파문을 보면 현 집권세력도 흰 장갑만으로 대선자금을 모으지는 않았던 것 같다.
모금한 돈의 출처와 액수에 대한 민주당 지도부의 해명은 국민을 헷갈리게만 한다.
정대철 대표와 이상수 사무총장간에 금액 차이가 100억원이나 났다.
입을 맞추지 못한 것이다.
물론 나중에 이 총장의 해명을 받아 정 대표가 "그쯤 되는 것 같다"고 입을 맞췄지만 이는 의혹만 더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선거혁명으로까지 평가받았던 희망돼지저금통 모금 액수 역시 오리무중이다.
파문이 확산되자 노무현 대통령은 '여야 대선자금 동시 공개'라는 묘수를 내놓았다.
이에 대해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은 "역사 앞에 고해성사를 하고 새 출발을 하자는 것"이라며 자못 비장한 해설을 붙이고 있지만 솔직히 '혼자 죽을 수는 없다'는 소리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노 대통령의 제안은 또 대선자금 공개보다는 '초점 흐리기'가 목적인 것 같아 더 불순해 보인다.
이 제안으로 국민의 관심이 한나라당의 대선자금으로 옮겨갈 것이고 그러면 민주당의 대선자금 문제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흐지부지될 것이란 계산을 하고 있지는 않느냐는 것이다.
설사 이 제안이 그러한 꼼수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네가 벗으면 나도 벗겠다'는 자세는 곤란하다.
이는 진실된 고해가 아니다.
고해는 나의 잘못을 고백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너도 하면'이라는 조건이 붙지 않는다.
한나라당도 대선자금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은 국민들도 다 어림짐작은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대선자금에 유독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 것은 노 대통령이 도덕성을 무기로 집권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한나라당에게 같이 벗자는 것은 결국 스스로도 도덕적이지 못했음을 자인하는 것이다.
역사 앞에 진실된 고해가 무엇인지 집권세력은 좀 더 고민해봐야 할 것 같다.
정경훈(정치2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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