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포럼-독일경제의 교훈

입력 2003-07-15 09:18:07

제2차 세계대전 이후 60년대까지 고도성장을 달성하여 '라인강의 기적'이라고 일컬어지던 독일경제가 오늘에 와서는 '유럽경제의 환자'로 불리울 정도로 침체상태에 빠져 있다.

독일의 경제성장률은 작년에 0.2%였고, 금년에는 0.3%로 예상되고 있으며 현재 실업률이 12%에 달하고 있다.

수많은 기업들이 높은 임금과 과도한 세금부담을 피해 외국으로 이전하거나 문을 닫아 일자리가 크게 줄어들었다.

어쩌다 독일경제가 이 지경이 되었는가? 1968년 집권한 사회민주당 정부가 70년대초부터 도입한 노동자 권익보호와 분배를 위한 제도가 독일의 경제활력을 상실하게 만든 주된 요인이라고 한다.

독일경제가 주는 교훈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노사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도입된 노동관련 제도이다.

개별기업의 임금과 노동조건은 기업단위가 아닌 산업별 단체협약에 의해 일률적으로 결정되기 때문에 개별기업의 상황은 무시된다.

어려움에 처한 기업이 종업원들과 임금삭감에 합의하더라도 이는 불법 무효가 되는 것이다.

또한 노동자를 해고하는 법적 요건이 매우 엄격하고, 해고된 노동자가 소송을 제기하면 소송이 끝날 때까지 그를 해고할 수 없기 때문에 노동자의 해고가 매우 어렵다.

그리고 노동조합의 경영참여가 법적으로 보장되어 기업의 의사결정에 노조의 영향력이 크게 미치기 때문에 아무리 회사의 발전에 필요한 사항이라 하더라도 노조가 반대하면 채택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로 인해 독일은 OECD국가 중 노동시장의 경직성이 가장 높은 나라가 되었다.

둘째, 삶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해 도입된 복지제도이다.

실업자 보호, 의료보험, 장애인보호, 자녀수당, 임대료보조 등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도입으로 독일의 노동자들은 소득의 평균 60% 정도를 세금과 각종 보험료로 납부한다.

또한 종업원들에 대한 사회보험료 부담 때문에 독일기업들의 노동비용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며 그 결과 기업들이 신규 고용을 기피하게 되었다.

또한 실업자에 대하여 실업수당을 비롯하여 각종 보조금을 지급하기 때문에 실업자들이 취업하여 일하기보다는 실업수당과 보조금을 지급받으며 놀거나 음성적으로 일하여 수입을 얻는 편이 훨씬 낫기 때문에 취업을 기피하는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셋째, 평등주의 교육제도이다.

독일에서는 초등학교부터 대학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면서 경쟁적 요소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즉 학생이나 학부모가 학교를 선택하거나 바꾸기 어렵고 학교도 학생을 선발하는 것이 아니고 관련기관으로부터 학생들을 할당받는다.

이처럼 학교선택권과 학생선발권이 크게 제한되어 있는 체제에서 경쟁이 있을 수 없다.

경쟁은 비인간적이라는 인식에 기초를 두고 있는 것이다.

2002년 OECD 회원국의 중고교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제학력평가에서 독일이 꼴찌를 차지하였고 다수의 상류층 가정들이 자녀들을 외국의 대학에 유학보내고 있는 현상은 독일교육의 현주소를 말해준다.

이러한 독일의 사례는 오늘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산업별 단체협약제도, 해고가 어려운 법제도, 노조의 경영참여, 교육의 평준화 등 독일경제의 활력을 잃게 만든 각종 제도를 지금 우리는 본받고 있는 것이 아닌가? 독일은 과거 자동차, 기계, 전기, 화학 등의 산업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기술력을 보유하였기 때문에 오늘날 이 정도의 경제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우리나라가 벌써부터 독일의 전철을 밟을 경우 10년 혹은 20년후의 우리의 모습은 어떻게 될지 두렵기만 하다.

라인강의 기적을 이룩하였던 60년대까지의 독일은 경제적 자유가 보장되고 경쟁과 자유의 원리에 따라 국가가 운영되었으나, 70년대 이후에는 참여와 복지, 평등과 분배의 원리가 지배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택하여야 할 국가운영의 원리는 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대답은 명확해진다.

김병일(전 공정거래 위원회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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