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부성-대구수필문학회장-회한의 상봉 '그리운 선생님'

입력 2003-07-12 11:15:16

'해마다 이날이 돌아오면, 지난 날 추억에 대한 그리움과 죄스러움 속에서 선생님의 모습이 새삼 떠오른다.

(중략) 철없던 시절은 용서와 관용으로라도 이해가 되겠지만, 이젠 그것도 아닌 50년에 가까운 세월을 덧없이 흘려보냈다.

선생님, 지금은 어디에 계십니까? 부디 만수 무강하십시오'.

이상의 글은 지난 5월 17일, '주말 에세이'난에 '그리운 선생님'이란 제하에 필자가 애타게 찾던 선생님을 향한 변변치 못한 제자의 고백 사연의 일부분이다.

그 애틋한 사연이 인쇄 매체를 통하여 독자의 가슴속에 전해진 지 이틀 후였다.

월요일 아침 10시경, 교장실로 걸려온 처음 듣는 굵직한 전화 목소리가 내 가슴을 다듬이질하기 시작했다.

"배 교장선생님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선생님께서 그렇게도 애타게 찾으시던 이영진 선생님이 바로 제 친구인데, 연락해 보세요"하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셨다.

바로 옆 동네인 두산동에 계신다는 것이다

지척이 천리요, 등잔밑이 어둡다더니 세상에 이럴 수가! 세상은 정말 넓고도 좁은 곳이다.

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을 겨우 진정시키고, 잠시 후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의 번호판을 조심스럽게 눌렀다.

그런데 이게 또 웬일인가! 두 번, 세 번 전화를 드렸지만, 애석하게도 연결이 되지 않았다.

절호의 희망이었는데, 또 끊어지는 걸까! 전화하신 분의 연락처를 적어두지 않은 것이 나의 경솔한 태도였고, 큰 실수였다.

오후 1시경에 나는 더욱 떨리는 손으로 전화 연결을 재시도했다.

드디어 성공이었다.

전파를 타고 들려오는 다정한 목소리는 진정 제자를 사랑하는 스승님의 마음 그대로였다.

그 기쁨은 하늘에라도 날아갈 듯하였으며, 가슴은 더욱 뛰고 있었다.

"선생님, 저 배부성입니다.

기억하시겠습니까?"

"그래, 부성이가. 이게 얼마 만인가?"

"예, 선생님. 건강하시지요?"

나는 벌써 목이 메어 있었으며, 콧등이 시려오고 있었다.

이미 눈시울도 촉촉히 젖은 채 추억은 타임머신을 타고 50년 전의 교실 풍경을 떠올리고 있었다.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고, 근일 중 한번 찾아뵙기로 약속드렸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이 선생님께서 키워주신 나의 미술에 대한 재질의 결과물, 그 동안 익힌 작품 한점을 때마침 오늘 드릴 수 있는 기회가 적중되었다.

마침 회원전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선생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 나는 괜스레 가슴이 두근거렸다

"선생님, 오늘 점심이라도 대접하고 싶은데, 한번 뵈올 수 있을까요?"

"그래, 만나세. 내가 점심을 살게"

선생님은 흔쾌히 승낙하시며 약 한 시간이 지난 후, 문화예술회관 전시장에 왕림하셨다.

정말로 귀한 걸음이시다.

우린 두 손을 꼬옥 잡고, 뜨거운 악수를 하면서 오랫동안 손을 놓지 못했다.

오랜 세월 동안 간직했던 선생님의 따스한 정이 나의 체온을 이내 데워 주었다.

비록 부둥켜안지는 않았지만, 이산 가족의 눈물 범벅의 상봉만큼이나 감격적인 순간이었다.

선생님은 74세의 연세임에도 아주 건강하게 보였다.

그리고 세월의 연륜을 그린 주름살 속에서도 환한 행복의 기쁨이 가득 담겨 있었다.

선생님은 전시된 나의 유화 작품을 보시고는 미소와 함께 크게 만족해 하셨다.

나는 모든 것이 선생님의 보살핌과 은혜였음에 감사하였다.

그리고 지난번 글 속에서 약속한 대로 그림 한점을 선물로 드렸다.

선생님은 매우 흐뭇해 하시며, 제자의 갸륵한 마음을 헤아려 주셨다.

그날 함께 점심 식사를 하면서, 지난밤 꿈속에서 베란다의 문 안으로 까치가 떼지어 날아 들어오는 것이 필시 반가운 사람을 만날 것 같은 길몽을 꾸셨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께서는 중등교사 자격증 취득과 미술 작품 활동, 시내 초등학교장으로 정년 퇴임 등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의 역정을 소상하게 들려주셨다.

참으로 교육자다운 생활 자세로 열심히 사신 분이셨다.

그날도 나의 글이 실린 신문을 보고 너무 기뻤지만, 아름다운 추억은 가슴에 담아두는 것이 더욱 아름답다고 생각하시며 그 사연을 오려서 코팅하여 스크랩북에 꽂아두었다고 하셨다.

그리고 선생님은 진갑까지 지난 나에게도 건강에 대한 걱정과 교육자로서의 바른 근무 자세에 대하여 잊지 않으시고 지도해 주셨다.

참으로 제자 사랑을 몸소 실천하시는 훌륭한 스승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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