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교육섹션(유아)-옛날 옛적에...-빤질빤질 보는구나

입력 2003-07-11 09:33:43

옛날 옛적 어느 곳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단둘이 살았더란다.

단둘이 사니까 적적해서, 하루는 할머니가 할아버지더러 부탁을 했지.

"여보 영감, 오늘은 장에 가서 재미난 이야기나 들어 오구려".

"그러지요".

할아버지가 장에 가서 재미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 가게 저 가게, 이 골목 저 골목 돌아다녔어. 그런데 아무리 돌아다녀도 재미난 이야기를 못 들었어. 그러다 보니 어느새 해질 무렵이 됐네. 하릴없이 집으로 설렁설렁 걸어가는데, 마침 한 젊은이가 저만치 앞서 가거든. 쫓아가서 부탁을 했지.

"여보게 젊은이, 재미난 이야기 하나 들려 주게나".

그런데 젊은이도 아는 이야기가 없어. 그래서 그냥 머리만 긁적긁적하면서 걸어가는데, 마침 저쪽에서 황새 한 마리가 살금살금 기어오네. 그걸 보고 젊은이가 한 마디 했지.

"살금살금 기는구나".

그러니까 할아버지는 그게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했어.

"살금살금 기는구나. 살금살금 기는구나".

집에 가서 할머니한테 들려 주려고 부지런히 외웠지.

그런데 황새가 살금살금 기어오다가 고개를 기웃기웃하거든. 그걸 보고 젊은이가 또 한 마디 했지.

"기웃기웃 하는구나".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그게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했어.

"기웃기웃하는구나. 기웃기웃하는구나".

집에 가서 할머니한테 들려 주려고 부지런히 외웠어.

그런데 황새가 기웃기웃하다가 이쪽을 빤질빤질 쳐다보거든. 그걸 보고 젊은이가 또 한 마디 했지.

"빤질빤질 보는구나".

이번에도 할아버지는 그게 이야기인 줄 알고 따라했어.

"빤질빤질 보는구나. 빤질빤질 보는구나".

집에 가서 할머니한테 들려 주려고 부지런히 외웠지.

이렇게 이야기 세 마디를 잘 배워 가지고 집에 왔어. 집에 오니 할머니가 기다리고 있다가 묻는 거야.

"그래, 재미난 이야기는 들어 오셨수?"

"아무렴, 아주 재미난 이야기를 들어 왔지요".

"어디 한번 해 보우".

"그러지요".

할아버지가 막 이야기를 시작했어.

"살금살금 기는구나".

그런데, 그 때 이 집에 도둑이 들었어. 도둑이 개구멍으로 살금살금 기어 들어왔단 말이야. 그런데 방 안에서 느닷없이 '살금살금 기는구나' 하니까. 그만 깜짝 놀랐지. 깜짝 놀라서 기웃기웃 살폈어. 그랬더니,

"기웃기웃하는구나" 하거든.

'아이쿠, 이게 무슨 소리야?'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누가 저를 보고 있나 하고 문틈으로 방 안을 들여다봤어. 놀랐으니까 눈이 빤질빤질할 게 아니야? 그렇게 빤질빤질 들여다봤더니,

"빤질빤질 보는구나". 아, 이런단 말이야. 도둑이 그만 혼이 다 빠져서,

'이크, 이 집 주인이 다 보고 있었군. 잡히기 전에 빨리 도망가자'. 하고,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갔어. 그래서 이야기 세 마디 하고 도둑 쫓았다는 거야. 허허허.

서정오(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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