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일 오전 타계한 고(故) 박동진 명창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는 이날 저녁부터 고인의 유족, 제자, 판소리계 명인들 등 각계 인사들의 조문 행렬이 이어졌다.
조문객들 가운데는 국립국악원 윤미용 원장, 국악인 신영희, 주봉신, 최승희, 강정자, 이영희(한국국악협회 이사장) 등 주로 국악계 인사들의 모습이 눈에 많이 띄었다.
박 명창과 30년간 호흡을 맞춰온 고수 주봉신(고법인간문화재 9호) 선생은 "처음으로 춘향가를 8시간에 걸쳐 쉬지 않고 완창했던 그날 공연을 잊을 수가 없다"며 "우리 국악계의 큰 별이 진 것"이라고 애도했다.
국악인 신영희씨는 "내가 TV 코미디 방송 등에 나가는 것을 두고 국악계에서 지탄이 많아 박 선생님께 하소연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선생님께서 '국악인이 무슨 귀족이냐, 광대지!'라면서 내 편을 들어 주셔서 자신감을 얻었던 기억이 난다"며 고인을 회고했다.
이날 빈소에는 노무현 대통령을 비롯해 이창동 문화관광부 장관, 심대평 충남도지사, 민주당 정대철 대표 최고위원, 세종문화회관 김신환 사장, 국립극장 김명곤 극장장 등 각계 인사들이 보낸 조화들이 줄을 이루기도 했다.
정부는 박동진 명창에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키로 했다고 밝혔다.
문화관광부는 "국악발전과 보급에 크게 기여한 공적을 기려 훈장을 추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8일 오전 87세로 타계한 박동진 명창은 우리시대 대표적인 판소리계 거목이자 대들보로 꼽힌다.
몇해전 모 CF광고에 등장, 구수한 목소리로 '제비 몰러 나간다' '우리 것은 소중한 것이여'라며 우리 것의 소중함을 우리속에 일깨웠던 주인공이기도 하다.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적벽가 보유자인 고인은 1916년 7월 12일 충남 공주에서 태어났다.
대전중학교 시절인 열 여섯살때 판소리에 빠져 소리꾼이 되기로 결심, 이후 무작정 집을 나서 전국 곳곳을 다니며 유명하다는 선생들을 찾아 소리를 익혔다.
그 때 만난 스승들이 당대 명창들이던 정정렬, 유성준, 조학진 등. 박 명창은 이를 계기로 1934년 정정렬 선생으로부터 판소리 춘향가를, 35년 유성준 선생으로부터 수궁가를, 36년 조학진 선생으로부터 적벽가를, 37년 박지홍 선생으로부터 흥부가를 차례로 배우게 된다.
1962년 국립국악원에 들어와 소리 공부를 계속하다 본격적인 유명세를 탄 것은 68년 국내 최초로 다섯시간에 걸쳐 판소리 흥보가를 완창하면서부터였다.
68년을 시작으로 이듬해에는 판소리 춘향가를 장장 여덟시간에 걸쳐 완창했으며 이어 70년 심청가, 72년 수궁가 등 판소리 다섯 마당을 차례로 완창하는 기록을 세웠다.
이는 당시 일반 국민들 사이에 잊혀져 가던 판소리를 새롭게 부흥시키고 이후 수많은 명창들이 완창 판소리에 도전하게끔 하는 직접적인 계기가 되기도 했다.
67년 국립창극단 입단 후 73년 적벽가로 인간문화재에 지정된 박 명창은 81년 은관문화훈장, 82년 전국국악대상, 83년 서울시 문화상, 2000년 KBS국악대상 등 수많은 상을 받았고 최근까지도 자신의 고향에 설립한 박동진 판소리 전수관을 통해 후진 양성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한편 박동진 명창의 장례식은 국악장으로 치러지며 영결식은 10일 오전 10시 국악원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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