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후면 노무현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한다.
미.일에 이어 세번째 외교나들이다.
지난번엔 '등신 외교' 발언 파문이 일기도 했지만 국가원수의 우방국 방문은 모양새와 성과에 따라 국민들의 자존심이나 감정에 예민한 반응을 일으킨다.
이번 중국 방문때는 우리 대통령이 혹 말 실수나 기(氣) 꺾이는 분위기 없이 당당하게 국익을 얻어내는 외교적 성과를 거두고 오기를 성원해 보자.
노 대통령이 만나게 될 후진타오(胡錦濤) 총서기는 스물세살때 공산당에 입당하고 문화혁명때는 산간오지 간쑤성(省) 수력 발전소 노동자로 밀려나 중국 특유의 난세를 살아남는 굴신(屈身)의 처세술을 익힌 인물이다.
노 대통령으로서는 부시나 고이즈미와 달리 치열한 난세의 역사가 점철된 14억 인구의 대국에서 뽑혀 올라온 후진타오는 결코 만만한 상대가 아닐 것이다.
중국인의 외교술과 상술, 사람을 다루는 용인술은 무궁무진함 그 자체다.
아마도 이번 방중때도 후진타오 외교팀은 노 대통령의 인물 됨됨이를 중국 특유의 인물 감별법으로 검증해 보면서 외교적 실익을 저울질 하려 들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우리 대통령이 외교의 지혜 겨루기에서 밀리지 않고 한 수 꺾이지 않도록 응원하는 충정에서 중국 역사속에 풍미했던 지피지기(知彼知己)의 인간전략술을 짚어보라고 조언해 드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중국 사람은 전통적으로 사람을 분별할 때 겉면보다 속을 들여다 보고 파악하는 관찰법을 중시한다고 한다.
공자와 노자가 서로의 인물됨을 평가했다는 사기의 기록을 보자.
공자는 노자를 만난 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달리는 짐승은 그물로 잡고 헤엄치는 것은 낚시로 잡고 나는 것은 활로 잡을 수 있으나 용은 어떻게 잡아야 할지 짐작을 할 수 없다.
노자는 바로 용과 같은 인물이다'.
자기의 생각과 재능을 쉽게 드러내지 않으면 상대가 나를 만만히 헤아리기 어렵다는 뜻이다.
노(盧)께서 새겨들을 만한 고사다.
삼국지에도 외교는 곧 지혜의 전쟁임을 가르치고 있다.
제갈공명과 사마중달이 대진(對陣)중 제갈량이 사자를 보냈을때 중달은 일절 군사에 관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그저 공명의 잠자는 시간이나 식사량 같은 일상적인 것만 눙쳐 물었다.
사자는 질문이 가벼운 일상 얘기다 싶어 공명이 아침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까지 군사 일에 힘쓰며 무슨일이든 확인하고 식사량은 적다고 대답했다.
중달은 사자가 돌아간 뒤 장군들에게 단언했다.
"공명은 식사량은 적은데 사무는 다망하다.
이것은 부하에게 큰일을 맡기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공명은 곧 심신이 지쳐 병을 얻을 것이고 목숨이 길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는 지구전을 폈고 얼마후 예견대로 공명은 죽었다.
또하나 고전적 인물 평가서인 관중(管仲)의 언행록에도 노 대통령이 특히 유의할 만한 조언이 담겨있다.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일구이언 하지 않는 자는 신용할 수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말수가 너무 많으면 스스로 주의해도 기밀이 샌다'. 그뿐 아니다.
세계 최초의 병법서 '육도' 등에도 중국 스타일의 외교적 수사법과 처세법은 그득하다.
중국의 최고 명문대학에서 6년간 한 과목만 빼고 전과목 만점을 받았다는 후진타오가 삼국지와 육도삼략의 병법서, 관중의 언행록, 한비자의 '내서설상' '사기'같은 인간전략 고전 등을 훑어 배우지 않았을리가 없다.
그런 후진타오에게 기죽지 않고 꺾어주기 위해서는 뭔가 준비된 지혜로운 '한수'가 있어야 한다.
그런의미에서 이번 방문에서 틀림없이 거론될 북핵얘기가 나올때 '즈라오후'(紙老虎)란 용어하나쯤 들먹여 보는건 어떨까.
'즈라오후'는 1946년 8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원폭은 미국 반동파가 인류를 겁주기 위해 만든 늙은 종이호랑이'라 비판했던 말이다.
후진타오가 네살일때 나온 상대국의 정치 시사용어로 "당신도 지금의 북핵을 마오쩌둥과 같이 종이호랑이로 보느냐"고 의표를 찔러본다면….
덧붙여 이번 방중길에 중국 천자(天子)의 왕관인 면류관에서 통치의 도(道)를 한단계 더 깨쳐오셨으면 금상첨화다
'천자가 쓰는 면류관의 면류(왕관 앞뒤로 드리워진 주옥장식)가 눈을 가리게 한 것은 나라일을 너무 세밀히 보지 말되 무형의 숨은 민심을 잘살피란 뜻이고 주광(관의 옆에 황색실로 만든 귀덮개)은 사소한 세상시비는 일일이 듣지 않되 소리없는 소리(민심)는 잘 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이다'(당태종)이다.
장관이 할일 일일이 다 챙기고 차관이 할말 일일이 앞장서서 대변하고 있는듯 하는 바람에 숨은 민심을 못보는 건 아닌지. 또한 언론의 자그마한 비판에 일일이 귀 세우는 통에 정작 바닥 민심의 소리는 못듣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방중길에 면류관의 통치의미를 곰곰 생각해 보는 것도 유익한 중국 방문의 성과가 될 것이다.
건강하게 잘 다녀오시기를….
김정길(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