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노조원 주요 집결지 병력투입 강제해산
철도청 소속 기관사.승무원 등으로 구성된 '철도노조' 2만여명의 조합원들이 정부의 철도구조개혁 강행에 반발, 28일 새벽 4시 전면 파업에 돌입했다. 이로인해 여객.화물열차 상당수의 운행이 중단됐으며, 정부는 이날 새벽 영주 등 노조원 집결지에 경찰력을 투입해 강경대응에 나섰다.
철도노조 천환규 위원장은 이날 새벽 파업 돌입을 선언했으며, 이에 따라 노조원들은 새벽 4시부터 업무를 중단하거나 근무 투입을 거부했다. 대구.경북 4천여명의 노조원 상당수는 지역본부가 있는 영주.부산으로 나뉘어 이동했다.
이에 앞서 대구.경북 노조원들은 27일 저녁 영주 철도운동장에 모여 파업전야제 행사를 열었고 서울 연세대에서도 철야농성이 이어지는 등 지역별로 파업 출정식이 열렸다.
노조 파업으로 28일 아침부터 열차가 파행 운행되고 있으며, 철도청은 비상 대체인력을 투입했지만 새마을호는 평소의 10분의 1 수준, 무궁화호는 4분의 1 정도만 운행됐고 특히 첫날 새벽부터 경부선 새마을호 운행은 무더기 취소됐다. 이에따라 철도청은 이용객들에게 역에 나오기 전 반드시 운행 여부를 확인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새벽 5시20분쯤 영주역 내 철도운동장과 부산대 등에 각 2천여명씩의 진압인력을 투입, 파업사태 조기 진압에 나섰다. 노조원들은 큰 충돌 없이 농성장을 빠져 나갔으며 노조 지도부는 이날 중 서울로 집결토록 지시했다.
철도청도 모든 노조원들에게 28일 오전 9시까지 복귀토록 명령을 내렸으며 불응할 경우 전원 징계하겠다고 밝혔다. 철도청은 2만여명의 노조원 중 4분의 1 정도가 지도부의 파업 일정에 적극적으로 호응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을 내고 정부가 철도노조의 파업에 공권력을 투입할 경우 임단협 시기 집중 투쟁과 연계한 노동계의 총력투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고 나섰다. 이로써 철도노조 파업을 둘러싸고 노동계와 정부가 정면충돌할 가능성까지 나타나고 있다.
철도노조는 국회 법사위가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 등 철도구조개혁 관련법을 통과시킨데다 정부도 협상안을 내놓지 않아 파업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 공단 물류 비상... 관광업계 직격탄
28일 철도노조 전면파업으로 주말 철도 여행객들이 심각한 불편을 겪고 포항공단이 물류에 비상이 걸리는가 하면 경주에선 관광객 감소 등 여파로 호텔 등이 몸살을 앓고 있다.
여객 열차편이 무더기 취소되자 동대구역.대구역을 찾았던 승객들은 발을 동동 굴렀다. 부산 직장으로 출근가기 위해 동대구역에 나왔다는 임정찬(35.대구 고성동)는 "늘 아침 7시30분에 차를 탔으나 오늘은 파업으로 차가 없을 것 같아 6시30분 열차표를 끊었다"고 했다.
동대구 고속터미널에서는 새벽 6시부터 오전 9시10분 사이의 서울행 고속버스 15대 승차권이 일찌감치 모두 매진되고, 오랜만에 긴 매표 행렬이 형성되기도 했다. 딸과 함께 친정에 다니러 왔다는 최청자(64.여.서울 화곡동)씨는 "예약했던 새벽 6시발 서울행 무궁화 열차 운행이 중단된데다 다른 기차편을 구하기도 막막해 고속터미널로 급하게 옮겨 왔다"며 "딸이 오늘 오전 11시 취업 면접을 보러 가야하는데 제 시간에 도착할 수 있을지 걱정"이라고 애를 태웠다.
포항에서는 벌써부터 물류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 포항제철소 인근 괴동역을 출발해 전국 각지로 수송되는 철강제품의 운송 중단이 28일 오후부터는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됐다. 괴동역 측에 따르면 이날 새벽 4시19분 유연탄을 실은 화물열차가 충북 제천 조차장역으로 정상운행했으나 나머지는 기관사가 없어 운행 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경주에서는 보문단지 호텔에 숙박한 국내외 관광객들이 환불 소동을 빚고 있으며, 고속버스를 이용하거나 김해.포항.울산 공항을 찾고 있지만 항공편마저 예약이 안돼 발을 굴렀다. 주말 서울에서 경주로 오려던 여행객들 상당수는 28일 오전7시30분 서울발 새마을호부터 운행이 중단되면서 예약을 취소하거나 여행코스를 변경, 관광업계가 비상에 걸렸다.
사회1.2부
◈ 철도파업 배경과 전망
철도는 사실상 지난해부터 조용할 날이 없었다. 김대중 정부가 민영화 작업을 임기 내에 끝내겠다는 방침을 굳히면서 작년 2월 노조가 이틀간 총파업했고, 뒤이어 지난 4월엔 같은 문제로 파업 일보 직전까지 갔었다. 그 이후 두달여만에 또 파업이 일어난 것. 특히 이번 파업은 노동계의 이른바 하투(夏鬪)와 맞물려 완전 해결까지에는 넘어야할 산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파업 왜 했나?
철도노조는 정부가 지난 4월 협상 때 충분한 협의와 사회적 합의과정을 거친 뒤 철도개혁 입법을 하겠다는 약속을 해놓고 이를 지키지 않은 채 관련 법안을 국회에 상정해 법사위까지 통과시켰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정부가 약속을 어겼으니 노조도 최후의 수단인 파업으로 맞서겠다는 것.
현재 정부가 입법을 통해 추진하고 있는 철도 구조개혁의 큰 틀은 시설과 운영의 분리이다. 철도청이라는 정부 단일 조직을 철도공사와 철도시설공단으로 분리, 시설관리는 공단이, 철도 운영은 공사가 맡도록 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철도산업발전기본법' '한국철도시설공단법' '한국철도공사법' 등 3개 법안을 마련해 놓고 있으며, '철도산업발전기본법'과 '한국철도시설공단법' 등은 27일 국회 법사위까지 통과해 본회의 처리만 남겨놓고 있다.
노조는 대외적으로 일단 정부의 구조개혁 입법 작업 자체가 중단되어야한다는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4월 노조에 한 약속대로 노조와 시민.사회단체 등이 참여하는 철도구조개혁 논의기구를 다시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노조도 '공사화'라는 대세를 완전히 거스르려는 것은 아닌 듯하다. 최대한 조합원들의 이익을 지켜내는 것에 더 큰 목적을 두고 있는 것. 일반 노조원들의 가장 큰 관심은 역시 돈 문제이다. 철도가 공사화되면 현재의 공무원연금 수급 대상에서 탈락하는 것이 아니냐 불안이 있어, 노조는 공사화 되더라도 공무원연금 자격은 일정기간 인정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노조는 또 고속철 건설 부채가 무려 11조원에 이르는 만큼 이를 철도시설공단으로 이관하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한다며 정부가 떠맡아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해결 전망은?
지난 정권 때 철도 민영화로 방침이 정해졌다가 이번 정권 들어 노조 압력에 밀려 공사화로 후퇴됐다는 여론의 화살을 맞은 바 있어, 정부도 이번엔 비교적 강경한 자세로 맞서고 있다. 노조와의 협상이 쉽지 않을 것임을 말하는 것.
때문에 정부는 이번 파업에 대해 당초부터 목적.절차상 모두 불법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고, 파업 직전 정부의 '고정 메뉴'였던 밤샘 협상도 사실상 하지 않았다. 파업 첫날 아침부터 경찰력을 노조원 농성장에 조기 투입시킨 것도 정부의 단호한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읽히고 있다. 협상이 아니라 정부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공무원연금 수급권 연장은 국민연금법 일부 개정 등을 통해 노조와 협상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 요구에 대해서는 강경하다. 고속철 부채의 정부 인수 경우만 해도 수익자 부담 원칙이 우선돼야 한다며 고속철을 타지 않을 국민이 많은 상황에서 고속철 부채를 전국민의 부채로 옮겨 놓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노조도 쉽게 뒷걸음질 칠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몇가지 사안에서라도 결실을 얻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철도노조는 지난해 민주노총으로의 상급단체 변경 이후 투쟁 강도가 강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기도 하다. 양측 사정이 이러니만큼 파업은 쉽게 끝내질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는 것이다.
◇파장은 어떨까?
가장 긴장을 높이고 있는 부문은 철도노조의 파업 투쟁이 노동계와 정부의 전면전으로 비화되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철도노조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은 27일 성명을 통해 철도노조에 대한 강경대응은 임단협 투쟁과 연계한 민주노총의 총궐기로 이어질 것이란 경고를 내놨다. 경찰이 파업 당일 아침부터 공권력을 투입한만큼 민주노총도 실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진 것.
민주노총은 다음달 2일로 예정된 금속노조, 금속연맹, 화학섬유연맹 등의 총파업에서 '힘'을 보여줄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더욱이 시민생활과 직결돼 있는 병원의 근로자들이 가입된 보건의료노조도 7월 중순 일제히 쟁의에 들어갈 것으로 보여 민주노총의 '예비된 힘'은 상당한 셈이다.
정부와 노동계가 힘겨루기에 들어갈 경우, 산업계 전반에 미칠 파괴력은 적잖을 수밖에 없다. 수백개 협력업체를 가진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업계가 파업의 선봉에 서면 대구.경북 부품업계도 회오리에 휘말릴 전망이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종전 정부의 미온적 대처가 지금의 파업 도미노 상황을 불렀다고 한목소리로 비판하고 있다. 줄 것은 주고 주지 않아야 할 것에는 "NO"라고 할 수 있어야 했지만 현 정부가 그런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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