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개비-스포츠 선수와 아버지

입력 2003-06-26 09:45:39

프로야구 대구삼성의 이승엽이 세계 최연소 300호 홈런을 기록한 날. 대구야구장 본부석에서는 이승엽의 가족들도 1만2천여명의 관중들과 함께 신기록 수립의 현장을 지켜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치며 좋아했던 이춘광씨. 환갑을 막 넘긴 이승엽의 아버지는 인터뷰 때마다 항상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지 않고 "아들을 대신해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말을 빼놓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야구 선수 이승엽을 경북고 2년 때 처음 알았다.

물론 기자로서 취재를 하면서 알게 됐다.

이후 이승엽이 대학 진학과 프로 진출을 놓고 줄다리기를 할 때 춘광씨에게 전화로 사실을 확인한 적이 있고 그후에도 몇차례 더 통화를 하며 "한번 만나자"는 얘기를 했었지만 서로 얼굴을 맞댄 적은 없었다.

지금은 아니지만 야구를 맡아 이승엽을 취재하면서 아버지는 어떤 사람일까를 생각해본 적이 있다.

기자들은 스타플레이어들의 거만함에 알레르기를 갖고 있다.

젊은 선수가 유명해지면 거의 본능적으로 우쭐해하기 마련이고 다반사로 예의를 갖추지 않는다.

그런데 이승엽은 젊은 나이에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유명세를 타면서도 거만함을 드러내지 않았다.

자신의 유연한 스윙 만큼이나 매사에 부드러움을 잃지 않았다.

이승엽의 예의바름은 아버지의 가르침 덕분이었다.

춘광씨는 프로에서 돈을 버는 것보다 대학공부가 중요하다고 강조했고, 번 돈의 일정액을 사회를 위해 쓰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무엇보다 '벼가 익으면 고개를 숙인다'는 교훈을 주지시켰음을 알게 됐다.

지금까지 스포츠 현장에서 숱하게 많은 선수들의 아버지들을 만났다.

야구·골프·축구 등 돈벌이가 되는 프로스포츠 무대에서는 아버지들이 최일선에서 자식들의 홍보·판촉·섭외를 맡아 사실상의 매니저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야구의 최동원·선동열·김상엽, 골프의 박세리·박지은·김미현·위성미 등등.

대다수 아버지들은 자식 자랑과 홍보에 적극적이다.

심지어 한 유명 야구선수의 경우 모든 것을 "아버지에게 물어 보라"고 해 아버지가 더 주목받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스포츠 선수들은 사회 경험이 없고 활동 폭이 좁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더 많은 것을 아버지에게 의존하고 영향을 받는다.

스포츠 선수를 두고 있는 아버지들에게 주문하고 싶다.

"자식이 스타플레이어가 될 자질을 보이면 스타의 역할과 자세부터 가르쳐 주십시오". 그것은 매사 최선을 다하고 겸손함을 잃지 않는 일이다.

김교숭 스포츠레저부 차장 kgs@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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