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에서-"예 대신 "왜요?", 그 삐딱이가...

입력 2003-06-25 10:05:21

새 학교라는 낯섦과 막연한 기대감으로 설레던 3월이 지나고, '쿵하면 호박 떨어지는 소리'라는 상용구를 생각케 할만큼 아이들과 제법 익숙해질 무렵이면 담임의 학급운영 방식에 재빨리 적응하고, 나름대로 철 든 모습으로 서로 맞춰가려는 노력이 역력해지는 걸 보면서 이것이 고학년 담임 교사의 즐거움임을 새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다 교사의 즐거움의 대상이 되어주지는 않는다.

보이지 않아도 좋을 것을 가끔씩 들키기도 하고, 의도적으로 교사에게 어긋나게 행동하는 삐딱이가 학급에 한둘씩은 꼭 있어 가슴을 앓게한다.

우리 반도 예외는 아니다.

이름을 호명하면 '예'가 아니라 '왜요?'라며 다분히 도전적인 느낌으로 다가오고, 따뜻하게 대하려는 노력은 그의 빈정대는 말투로 번번이 좌절로 그쳐 가끔씩 '내 인내력의 한계는 어디인가?'라는 의문과 아울러 교사로서의 회의를 동시에 가져오곤 했다.

그러던 나의 강적 삐딱이가 즐거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한 행사가 있었으니 며칠 전 2박 3일간의 학생 야영 수련이었다.

학급행사라면 늘 소 닭 보듯 하던 친구가 야영장에 도착하더니, 평소 소질이 돋보이던 디자인 감각을 살려 주도적으로 분임기를 만들어 걸고, 머리를 모아 짜낸 장기자랑 '언저리 뉴스와 상황 재연'을 짬짬이 연습하는가 싶더니 급기야 첫날 밤 화려하게 무대에 올라 관중을 웃음바다로 몰고 가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다음 날, 야영의 하이라이트인 캠프파이어가 시작되고 운동장을 넓게 돌며 신명나는 게임 이후 장작불이 사그러들 즈음 늘 그러했듯이 손과 손에 촛불이 전해지면서 한 여학생의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편지가 낭독되고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내가 정작 놀란 건 그 틈에서 새어나오는 그 친구의 울음소리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눈물이었다.

거칠고 단단하기가 모난 돌로만 여겼던 나로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순간 머리를 무엇으로 맞은 듯한 충격과 지금 내가 어떤 행동을 취해야할지 몰라 혼란스러웠다.

두 해전 아버지를 하늘 나라로 보낸 고통이 되살아난 어린 가슴이 얼마나 아렸을까? 미루어 짐작하고 아픔을 함께 하지 못한 미안함을 뒤로한 채 촛불을 들고 곁에 다가가 가슴에 파고드는 아이를 쓸어안았다.

"선생니∼임…""그래". 더 이상 무슨 대화가 필요하겠는가. 그 동안의 서운함은 사라지고 어디서부터인가 벽이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작은 촛불이 만들어낸 교감. 지금까지 나는 왜 아이들에게 마음을 따뜻하게 녹여내는 촛불이 되지 못했을까? 여태껏 자율이라는 명분으로 아이들 스스로 움직이기만을 바라고 좀 더 아이들 곁으로 다가가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나 않았을까? 때로는 어긋난 모습으로, 때로는 거칠게 항의하는 것도 그들 나름대로는 좀 더 이해 받기 위한 몸부림일지 모르는 것을. 사랑에 목말라 하며 사랑을 어떻게 표현할 줄 몰라 어색해하며 반항과 도전으로 스스로를 포장하고 있을 삐딱이들, 비록 고단하고 힘들어도 그들을 위해 우리가 할 일이 무엇일까를 다시 한번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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