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노조요구 대폭 수용 '선례' 우려

입력 2003-06-24 11:37:22

대구지하철 노사 양측이 파업 돌입 6시간만에 사실상 잠정 합의안 타협에 이름으로써 공공부문 분규사태가 큰 고비를 넘겼다.

특히 노동계의 이른바 '6말7초' 줄파업의 선두를 치고 나갈 것으로 우려됐던 지하철 분규가 조기에 해결돼 다른 산업현장의 분규도 조기 타결될 것이란 희망 섞인 목소리도 조금씩 터져나오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용자측이 노사간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는 항목들과 관련, 파업확산을 우려해 노조 요구를 대폭 수용함으로써 '잘못된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어떤 것들에 잠정 합의했나?

파업의 도화선이 됐던 노조의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은 대부분 반영됐다.

인력 충원과 관련, 대구지하철공사는 60명을 추가로 채용하되 올 연말까지 45명, 나머지 인원은 내년 3월까지 채용을 완료키로 했다.

공사는 또 운전사령실의 안전 운용을 위해 모니터 감시요원을 3명 증원키로 결정했다. 공사는 이와 함께 승강장 안전요원으로 공익근무요원을 동원해 활용키로 했다.

지하철 참사 직후 불쏘시개라는 비난을 받았던 전동차는 2005년까지 모두 불연재로 바꿔주겠다는 합의도 공사는 해줬다.

공사는 안전 우선 경영에 노력한다는 선언적 문구도 합의문에 넣었으며 공사내에 안전위원회도 설치해 두기로 했다.

이번 참사에서 순직한 조합원과 청소용역원에 대해서는 추모비도 건립해주기로 했고 참사 당시 부상한 조합원은 부서 배치 전환을 해주기로 공사는 노조측과 합의했다.

공사는 단체교섭안과 관련해서는 조합 간부의 출장을 25명까지 인정해주기로 하는 등 승진승급, 공가 처리, 휴게시간 보장, 퇴직금 지급안 변경 등에 대해 노조측과 단체교섭 합의안을 만들었다.

◇문제는 없을까?

우선 특별단체교섭 합의안에서 향후 가장 큰 문제로 부각될 것은 역시 '돈' 문제. 지하철공사는 현재 인력이 부족하다는데 노조와 인식을 같이 하고 늦어도 내년 3월까지 60명을 더 채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인력 충원은 인건비 부담을 수반하고 있어 최종적으로 시행되기까지는 난관이 적잖을 것으로 보인다.

대구시내 공기업 한 관계자는 "대구시내 공기업 모두 정원에서 5%이상 현원이 부족한 상태인데 지하철공사만 유독 노사합의를 통해 인력을 충원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적자에 시달리는 지하철공사가 또다시 적자를 불린다면 결국 지하철공사를 짊어지고 가야하는 대구시 재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

또 다른 공기업 관계자는 "현재 행정자치부의 공기업 구조조정 지침은 인원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인원을 줄이면서 사람 대신 다른 업무 개선 도구를 통해 인원을 늘린 효과를 찾자는 것"이라며 "가장 손쉬운 인원확충을 통해 문제점을 해결하려한다면 방만한 공기업 운영이란 비난에 또다시 직면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전동차 내장재 교체비용도 수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보이지만 재원마련이 쉽잖을 전망이다. 현재 건설교통부가 이 돈을 지원할 예정이지만 실제 얼마만큼 집행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한편 특별단체교섭 외에 정기 단협안도 '노조 이기주의'가 일부 반영됐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시내 공기업 한 간부급 인사는 "8급 자동승진제는 대구시내 다른 공기업에는 없는 것"이라며 "대구시 재원을 받아야하는 시 산하 공기업이 이런식으로 노사협상을 해버리면 대구시내 공기업 전체의 노동비용이 상승하고, 결국엔 대구시 재정까지 악영향을 준다"고 했다.

◇향후 여파는?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이번에 지하철노조가 제시한 특별단체교섭요구안은 공사의 인사.경영권에 관계되는 것으로 사실상 노사교섭 대상이 아닌데도 공사측이 이를 협상 대상에 넣음으로써 향후 공기업 노사협상에 좋지 않은 선례를 남겼다는 지적을 하고 있다.

실제로 경북지방노동위원회도 지하철노조의 이번 특별단체교섭요구안을 노사간 단체교섭 대상이 아니라고 판정, 이번 파업을 사실상 목적상 불법이라는 유권해석을 내렸었다.

대구노동청 한 관계자는 "인력 충원 등은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으로 사용자 고유권한인데 이를 노조가 간섭하는 것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며 "이런 선례가 자꾸만 만들어지면서 파업 규모를 키우는 등 노사관계의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고 우려했다.

경북대 이달휴 교수는 "판례로 볼 때 단체교섭은 근로조건 향상과 직접적 관계에 있는 것이라야 한다"며 "최근 노조들의 행동은 정도를 지나친 것이 많으며 결국 우리 경제에 주름살을 끼치는 요소로까지 작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대구 지하철 노사가 파업에 돌입했음에도 불구, 예상보다 빨리 타결에 이름으로써 노동계의 '6말7초 투쟁'의 파괴력도 상당 부분 저하될 것이란 의견도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최경철

문현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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